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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Jun 12. 2023

좋은 어른이 주는 하루

uncle shim

종이에 오일파스텔, 수채색연필, 색연필

나의 친가 쪽 사람들은 다 키가 작다물론 나를 포함해서하지만 딱 한 사람만 빼고큰 고모부는 마치 호빗족에 놀러 온 회색마법사(나중에는 백색마법사가 되지만간달프 같다어릴 적 나는 그렇게 키가 큰 어른이 우리 가족 내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다 조금 컸을 때 큰 고모부는 다른 유전자라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스무 살을 넘어 누군가를 놀라게 만드는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을 때까지도 고모부와 나는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명절이나 친척들이 모이는 가족모임에서도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인사정도만 드리는 게 전부였다그렇게 뵙고  후에 한 번은  고모부를 밖에서 뵌다고 해도 날 알아보지 못하실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랬던 내가 고모부를 그리고 고모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많아진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성인이 되고   아마 가장 많이 들었던  중에  "사람일은 모른다관계라는 것도 계속 변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고모부와 나를 떠올릴 때 속으로 "그래 사람일은 정말 모르는 거라니까"하며 이마를 탁 치게 된다. (실제로 이마를 치진 않지만 속으로는 강하게 몇 번은 쳤을 거다.) 서른이 되어서야 나는 고모부와 어색함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모부와 나는 폴란드여행으로 가까워졌다명목상으로는 폴란드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간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보다 같이  고모부와 고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모부와 고모 그리고 나는 한 달 동안 폴란드의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8시간 동안 기차를 함께 타고 어두워진 눈길을 꾹꾹 누르며 숙소를 찾아가고식당과 카페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사진을 찍고 맥주와 함께 먹을 과자를 사고 여행에서 뜻밖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어느새 더 이상 고모부에게 볼하트 포즈를 요구하는 내가 되어있었다.  고모고모부와의 마지막 여행 일정으로 자코파네라는 곳을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시간이 멈추기를 바랄 정도에 이르렀다손주를 본 나이가 되신 고모부와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나 힘들겠지라는 생각에 씁쓸하고 아쉬워졌다과거도 미래도 없고 현재만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어느 물리학자의 말이 생각났다심지어 현재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는 그 물리학 교수의 말대로라면 빠르게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시간들이 야속하게까지 느껴졌다누군가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초단위로 아쉽게 느껴지는 감정은 기억을 더듬어봐야  정도로 오랜만이었다처음에는  어른과 함께 하는 여행이 걱정되고 즐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했던 생각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들이었는지 다시금 느껴졌다한국으로 돌아오기   나는 걷기를 좋아하시는 고모부를 따라 아빠집 근처를 걸었다작은 이차선 도로를 끼고  걸어가면 작은 페이스트리카페가 있었는데 아빠와도  둘이  본 적 없는 카페를 고모부와  둘이 가게 되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패스트리와 음료를 주문하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 2시간가량을 이야기했던  같다 대화는 폴란드에서 본 작은 마을들처럼 평화로웠고 편안했고 따뜻했다그곳 그 시간에 나는 그동안 어떤 어른에게도 말하지 못한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다친구가 아닌 어른에게는 처음 내비친 마음이었다우울한 마음을 극단적으로 털어놓은  말에 고모부는 조금 놀라신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다고모부는 과장된 격려나 "" 아닌 위로를 해주셨다정확한 모든 문장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화의 끝에 지금은 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있었다살아낼 용기가 생긴 시간이었다생생하게 살아있는 카페 테이블 위의 붉은 튤립처럼 그날의 대화는 그날로 끝나버린 것이 아닌 지금 나의 일상에서 살아있는 위로로 남아있다아이에게만 좋은 어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마음이  크지 못한 어른에게도 좋은 어른은 필요하다그리고 좋은 어른은 뜻밖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나에게 좋은 어른이 고모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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