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오지 않는 여름
차트에 따르면 오늘은 파도가 정말 좋을 예정이다. 아침부터 기대하고 바지런을 떨어 5시 반 입수했다.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없는 것을 기뻐했겠지만 나는 아직 아무도 없는 바다가 두렵다. 내가 잘 하고 있는 지 비교하여 살필 기준이 필요하다. 스스로 잡은 라인업이 맞는 지 확신하기 어렵고, 조류에 쓸려나가는 스스로를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별 수 없지, 애매한 감으로 허우적대며 라인업을 잡아나간다. 아직까지는 파도가 두꺼워서 확실한 게 아니면 잘 잡히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해수욕객들이 들어오는 시간인 8:30이 되어 나와서 밥을 먹고 쉬었다.
저녁에는 입수하려고 했더니 이미 커진 상태다. 파도가 느리고 존재감 있게 앞으로 스으윽 밀려왔다. 파도가 너무 좋아보여서 신이 났다. 들어가자마자 너무 재미있게 탔는데, 어느새 파도가 다시 안 잡힌다. 파도가 조금씩 정리되면서 크기가 작아졌을 뿐더러 두꺼워지면서 도통 내가 파도를 잡았는 지 안 잡았는 지 감이 오지 않았다. 파도가 느리고 두꺼운 탓에 잡힌 느낌이 날 때 쯤이면 나는 이미 파도 위에 있기 일쑤였다. 위에서 겨우 잡아서 내려다 보면 아래는 절벽 같다. 미끄러져 내려갸아 하는데 무서워서 보드를 뒤로 빼길 어언 몇 번인가. 보드를 수직으로 내리면 당연히 높아서 무섭고 사이드로 내리기도 익숙하지 않아서 무섭다.
그렇다면 패들을 더 빨리 해서 파도를 앞에서 잡아서 안정적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는데, 팔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괜시리 묵직하기만 하고 느린 팔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재미있는 파도를 몇 개 잡아타고 어느새 주변이 캄캄해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가서 조급해지는 그 때, 내 머리높이만큼 큰 세트에 말려서 물 속에서 데구르르 구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해변쪽에 다다라있었다. 지쳤기에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나왔다. 샤워하다 눈을 감으면 눈 앞에 파도가 나타낫다. 글라시한 파도와 집채만한 파도가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물뽕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내 정신.
샤워를 하며 생각한다. 겁이 없는 라인업의 그녀는 참 잘 타더라, 작은파도에서는 나와 비슷한 것 같은데 큰 파도에서는 수 없이 말리면서도 나보다 훨씬 많이 탄다. 막상 타고나면 그리 크지 않고 별거 없는데 나는 괜히 쫀다. 조금 전에도 잘 잡은 파도가 있었는데 뒤를 돌아봣는데 너무 커서 히익 하고 보드를 뒤로 뺐다. 그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막상 타면 별로 안 큰데 쫄아가지고.
오늘은 오랫만에 도전적인 파도를 타서 쫄보인 내 모습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런 파도에 안 쫄려면 작은 파도에서 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짜피 파도가 커 봤자 타면 별로 안 크다. 특히 오늘은 두껍고 느려서 더욱이 타면 앞으로만 가도 괜찮았다. 그냥 타자!! 말리면 어때. 어짜피 말리면 물 속일 뿐이니까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나에게 수 없이 말해도 막상 큰 파도가 닥치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아쉽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8월 초의 이 파도가 내 마지막 여름 파도가 되었을 줄이야. 이후로는 주말에는 파도가 영 없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가을이 되어있었다. 이 날 전의 파도도 5개월만에 타러 갔던 것이었는데. 되돌아 보니 정말 얼마 못 갔다. 직장인의 파도는 정말 귀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사라질 때야 아쉽다. 여름 해를 충분히 쬐이지 못한 것 같다. 새파란 하늘이 정말 가을이 된 것 같다. 작년에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금새 까먹고 올해도 여름의 끝무렵이 될 때까지 곧 여름이 돌아올 것이라 믿었었다.
내년에는 정말 있을 때 더 많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