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내내 후회한 이야기
시즌 오픈 후 첫주말이다! 이번 토요일은 연휴의 시작이므로 사람들이 도로에 나오기 전에 일찌감치 출발한다. 새벽 네 시반, 양치만 하고 전날 챙겨놓은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열심히 달려 막상 도착했더니 웬걸, 파도는 아직 꿀렁꿀렁하기만 하다. 부리나케 온 보람 없이 시즌방에 드러눕는다. 파도는 언제 올라오나 하고 간간히 들여다 본다. 파도가 없는 양양은 무료하기만 하다. 아침에 이미 서브웨이를 먹었지만 심심해서 또 빵과 커피를 먹는다.
돌아와서 아직도 꿀렁꿀렁한 파도를 본다. 파도가 커지기 시작할 때는 항상 이렇게 차피한 경향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커진 파도가 작아질 때 파도가 더 깔끔하다고 한다. 오전보다는 조금 사이즈가 생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꿀렁꿀렁하고 안 잡힐 것 같이 생겼다. 길도 없다. 들어갈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들어가 낮잠을 잔다. 세 시 부터 준비해서 입수해서 선셋서핑을 하면 네 시간은 거뜬히 타겠지, 체력을 아껴야지 라고 생각하며 잠에 든다.
그리고 세 시, 옷을 갈아입고 선스틱을 바르고 입수한다. 어? 막상 들어오니 생각보다는 잘 잡힌다. 기대가 낮아서일까, 이정도면 감지덕지다.
파도가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이런 날에는 라인업 잡기가 어렵지만 파도를 잘 보는 유진언니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면서 라인업을 잡았다. 파도가 서는 포인트만 잘 잡으면 잡기 어려운 파도는 아니다. 파닥거리며 꽤 재미있게 파도를 탄다. 조류가 나를 왼쪽으로 밀어내지만 허우적허우적 팔을 내저어 가며 라인업에서 자리를 지킨다. 정신 없이 라인업을 찾아다니며 타다 보니 어느 새 다섯시 반, 만조다. 물이 두꺼워져서 파도가 퍼지기 시작한다. 퍼진 파도는 잡히지 않는다.
아쉽다. 너무너무 아쉽다! 이렇게 빨리 파도가 나빠질 줄 알았으면 재지 말고 더 일찍 들어올걸. 아쉬운 마음에 몇 번 더 허우적 대다가 결국은 나온다. 늦게 들어간 것이 너무너무 아쉽다. 조금만 더 빨리 들어가서 한 시간이라도 더 탈걸. 이렇게 하루를 날리다니. 너무나 허무하고도 아쉬웠다.
하지만 내일의 차트가 조금 더 좋았으니까 내일을 믿어보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다들 차트 보더니, 아- 하는 한탄의 목소리를 내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아.. 망했다.. 파도 없다.. 더 차가 막히기 전에 커피나 한 잔 하고 늦기 전에 서울로 올라온다. 이틀 내내 빡세게 탈 줄 알았던 나,, 단 두 시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역시 파도는 있을 때 타야 한다. 나중의 파도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두는 일 따위는 의미 없다. 동해 바다에서 파도를 재고 따지는 것은 사치다.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타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 것도 타지 못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하다.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직접 그 기회에 뛰어들지 않으면 그회는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오늘 하나를 배웠다.
올 해 상반기 동안 서핑 없는 겨울과 봄을 보내며 어쩌면 이젠 서핑을 안 해도 되겠다고 잠시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굳이 서핑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고 편한 걸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직까지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나를 보니 그것은 기만이었다. 서핑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핑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다. 여행을 갈 수 있고 서핑을 위해 차를 살 수 있다. 다른 것을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서핑은 아직 나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오늘 양양에서 돌아온 나는 저녁에 러닝을 하러 나갔다. 지난 이틀을 잘 자지 못해 잘 달릴 수 있을 지 걱정했는데, 무거운 몸 상태와 달리 가볍고도 상쾌하게 뛰었다. 러닝을 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서핑을 더 오래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러닝은 오래 바다 속에서 버티는 지구력을 길러주니까 서핑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름길이다. 상쾌하게 러닝을 마치고 이 글을 쓴다.
다음 주도 파도가 있다. 다음 주의 파도를 위해 이번 주도 열심히 러닝을 해야지. 그리고 다음 주에 파도가 있을 때는 별로라도 망설이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