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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l 15. 2023

퇴사를 결심했다.

나는 어떻게 나를 쉬게 하는지 안다. 나는 운동을 해서 잠을 푹 자고 또 아침에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삶이 유지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리프레시하는데 도움이 되고 종종 다녀오는 주말 서핑 트립 덕에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찾는다. 이런 최소한의 삶이 유지되어야만 삶을 살아가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이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여섯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고 적어도 여덟 시 반에는 일이 끝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는 이런 루틴이 쉽지 않다. 빨리 마치기 위해서 점심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고 출퇴근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사무실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집에서만 일을 했다. 회의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멀티태스킹을 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항상 모자라다.


이번 주는 오일 내내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집 앞 김밥집에 전화를 해 놓고 가져왔다.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일하면서 먹거나 김밥을 받아오는 길에 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종종 생각을 한다. 의미 없이 날리는 시간들 -유튜브를 보고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 을 인생에서 제거해버리면 삶이 너무나 효율적으로 돌아갈 텐데. [기상, 산책, 아침식사, 독서, 일, 강아지 산책, 운동, 수면] 하루 일련의 과정을 새는 시간 없이 빡빡하게 채울 수 있을텐데 하고 생각을 한다. 너무 지쳐 가만히 강아지를 볼 때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시간에 메일을 하나 더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가 바라는대로 쉼 없이 달리는 것조차 정신적인 에너지가 너무나도 필요하다.


시간보다도 더 급한 건 절대적인 에너지의 부족일 것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일하면서 이미 방전시켜 버린다. 매일 열 개 내외의 회의를 하면서 동시에 다른 메시지와 메일에 답장을 한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해야 하고 또 동시에 다음 회의를 잡아야 한다. 끝내고 나면 운동을 갈 의욕이 없어진다. 집을 치우고 싶지만 손가락 하나 들고 싶지가 않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운동 끝나고 탕에 몸 담그는 그 느낌도 정말 사랑하는데. 가고 싶지가 않다. 그냥 움직이기가 싫다.


물론 나는 내 일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성취감이 느껴지는 일이고 성과를 내면 뿌듯하지만 요즘은 성과를 측정하는 것조차 시간을 소모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최소한의 실행을 위한 일만 해도 그리고 관계자들을 조율하고 대답하는 일만 해도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나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PO로서 내가 해야 할, 데이터를 보여주고 설득하고 성과를 측정해서 공유하고 다시 데이터를 보고 할 일을 정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하는 일의 핵심인데, 지금 나는 주어진 일을 잘 실행하는 것에 그친다. 정책을 세우고 사람들을 조율하고 정리하고 나면 에너지가 없다. PM에 가깝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건 악순환이다. 나를 움직이던 동력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6월, 하와이에서 돌아와서 무슨 수를 써서도 야근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내가 생각난다. 악착같이 일해서라도 저녁시간만은 지키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한 달, 야근을 안 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저녁시간을 까먹는 건 내 동력을 까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운동과 숙면가 있어야만 내 배터리의 성능이 유지될 수 있다.


내년 3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나면 10월이니까, 거기서 5개월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삶을 계속 괴롭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주인으로서 맞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3월에 연봉을 높이고 성과급도 받을 때까지, 그리고 메이저 기업의 채용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맞지만 내 삶을 생각했을 때는 10월까지 정리하고 끝내는 게 옳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위해 내 삶을 버리는 것을 그만할 때가 되었다. 삶은 너무 짧고 내 젊음은 소중하다.


출처: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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