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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Dec 15. 2021

5. 공중화장실에 대한 의문

흑역사의 추억

  


스물 한 살 때 스무 살의 남동생과 둘이서 서울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처음 남매가 함께 한 여행이었고, 서울에 간 것도 처음이었고  호텔에서 자 본 것도 처음 이었다.

둘 다 성인이 되고 첫 국내 여행이라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기만 했던 그 때, 남자 화장실을 여자 화장실로 착각하고 잘 못 들어간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워낙 오래 전이라 당시 어느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을 이용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 명동역 이었 던 것 같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곧장 화장실로 직행 했는데 붐비는 인파에 역사 안 볼거리에 정신 없이 걷다 보니  화장실은 제대로 찾았으나 번지수를 잘 못 짚고야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 갔는데 뒤에서 누나!!!! 하며 내 옷이 늘어지게 급히 날 잡아 끄는 동생의 손길이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뒤 돌아 서있는 몇 몇 분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정신이 번쩍들었고 동생에게 끌려 백스탭을 밟으며 급히 나왔다. 심장은 곤두박질 쳤지만 표정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반대편 여자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동생이 너무 자연스럽게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내 모습에 놀라 뛰어왔다고 하며 누나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안에 있던 아저씨가 깜짝 놀라더라며 자기가 다 창피 했다는 얘기를 여행 내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같은 실수를 한 적은 없지만 반대의 상황을 목격한 적은 있다. 잠실 운동장 화장실이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남자는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나도 용무를 마친 터라 바로 밖으로 나갔었는데 남자는 기다리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가서 상황을 얘기하며 당황스러움을 진정시키려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과거 나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그 남자가 어떤 심정일지 상상이 갔다.


나에게도 일어난 일이고 남에게도 일어나는 일인걸 보면 당연히 사람인지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인데 요즘 들어서 종종 드는 생각이 있다면 똑같이 잘 못 들어가도 여자 화장실 보다 남자화장실이 더 민망하다는 것과 굳이 잘 못 들어가지 않아도 들어가는 문이 없는 남자 화장실을 지나칠때면 여자화장실은 물론이고 남자화장실도 들어가는 문을 필수로 설치 하는게 맞지 않나 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 1층 상가는 남녀 화장실이 나란히 양옆으로 있고 들어가는 문은 따로 없는데 가끔 남자 화장실을 지날 때면 보고 싶지 않은 뒷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오히려 여자화장실은 다 칸막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볼일을 보고 나와도 정리된 상태라 막 나온 사람과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그다지 민망하지 않지만 남자 화장실은 지나갈 때 마다 서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도 꼭 스치듯 눈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꼭 우리집 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이라던지 공중 화장실은 남녀 둘다 입구에 문이 없거나 여자 화장실만 문이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아무리 뒷 모습이라해도 남자들은 민망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런데서 오는 사생활 노출은 분명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불편한 상황일 것이라 생각 된다.


애초에 왜 남자 화장실을 안이 훤희 들여다 보이는 구조로 만드는 것인지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거면 소변기를 설치할 때 보이지 않는 가림막이라도 같이 설치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2017년 한 기사에 따르면 남자화장실 외부 노출 문제는 2004년 화장실문화연대가 서울 시민 150명(남성 80명, 여성 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남녀 공통으로 지적된 바 있다. 당시 남성 응답자 중 83%가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 중 50%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가림막 설치를 요구했다. 특히 여성은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인 95%가 가림막을 설치하는 데 동의했다. 여성들도 "누가 용변을 보고 있는 뒷모습이 보이는 게 지나갈 때마다 민망할 따름"이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7/08/529604/)라는 글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이미 몇 년 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21년이 되어도 여전히 변한 것은 없고 사람들은 여전히 불편한 시선을 억지로 피할 뿐이다.

남자 화장실이 유독 문이 없는 이유는 아마 사회적으로 통념 된 남녀의 고정관념에서 비롯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남자인 동생은 급하면 종이컵이나 물병에 볼일을 보게 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있어도 길 한 복판이라 해도 갓길에서 뒤만 돌면 볼일을 볼 수 있었고 남자이기에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가 분명 존재 했다. 또 어릴 적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술에 취해 전봇대에 실수를 하는 장면이 종종 나왔던 것으로 기억 한다. 나는 실제로도 본 적이 있고 정말 오랜만에 얼마전에 전봇대에서 볼일 보는 남자를 마주 한 적도 있다. 한 낮에 동네 골목도 아니고 차가 즐비 하게 다니는 2차선 도로가 있는 보도에서 대담하게도 말이다. 그 사람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든 낮술을 했든 정신이 맑은 상태든 중요한 건 여성의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전봇대에 볼 일 보는 건 남자 아니면 개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에 입구 없는 남자 화장실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남자는 좀 보여도 괜찮고 여자는 보이면 안된다는 고루한 사상에서 착안된 결과물로 말이다.


우리 집 남동생은 집에서 볼일 볼 땐 앉아서 보라고 입이 닳도록 잔소리를 해도 밖에서 하던 그대로 서서 볼일을 본다. 어떤 남자들은 여자 가족의 잔소리에 못 이겨 앉아서 볼일을 보는 사람도 있다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남자도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매너를 배웠다면 지금 처럼 입구 없는 남자화장실이 만들어 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글을 쓰면서 자료조사를 하다가 이미 이러한 문제를 나보다 먼저 고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걸 알았고, 시대가 변하는 만큼 다 같이 한 번쯤 생각 해 봤으면 한다.

이미 노후한 남자 화장실을 개조할 수 없는 것도 사실 이해가 안된다. 안을 개조 하는데 예산이 많이 들어가면 입구에 문 만 달아도 모두에게 해피엔딩 아닌가. 간간히 남자 화장실 입구에 문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맘이 편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티를 내지 않는 이런 문제들은 아직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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