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를 안내드리고 돌아서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젊어보이니까 낯선이에게서 '아가씨'라는 말을 듣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면 미혼이어도 누군가가 나를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호칭에 당연한 듯 뒤돌아 봐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쓰는 다양한 호칭들이 어떨 때는 관계를 더 친근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낯선이에게 통용 되는 아가씨 아주머니 아저씨 등의 호칭은 부르는 사람도 부르면서 긴가민가 한 적이 있을 것이고 듣는 사람도 속으로 당혹스러운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내가 간혹 학생이라고 불릴 때 그러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 마트에서 캐셔 아르바이트를 할때 나보다 훨 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께서 나에게
언니! 라고 부르며 말을 걸 때면 당혹스러웠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왜 나보고 언니라고 부르는 거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서비스직에서 일해본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객에게서 언니라는 호칭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듣기 싫은 호칭은 아니지만 친근한 것 같으면서도 낮춰 부르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또 가끔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분명 주인공이 상대방을 이름으로 불렀는데 자막에는 형..!이나 오빠..!로 나올때가 있다. 번역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배역들의 관계성은 보다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데 어떨 때는 몰입도가 깨지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호칭에 민감한 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통상적으로 사용 되는 호칭이 그렇게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이 다음에 나이가 들어 할머니라고 불린다면 이상하게 서글퍼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경우 영화나 미드를 보다보면 종종 낯선 나이든 여성에게 말을 걸때 lady- 라고 부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꼭 나이든 여성이 아니어도 성인 여성에게 사용되는 lady라는 호칭은 아가씨도, 아주머니도, 할머니에게도 공통으로 쓸 수 있기에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부담이 없어 보인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아저씨, 할아버지 대신 man이라고 부르니 얼마나 간단한가. 나는 예전 원빈이 출연했던 영화 아저씨도 아니 원빈이 아저씨라니? 하며 제목에 놀라고 별개로 영화를 보곤 원빈 외모에 또 놀랐더랬다. 만약 주인공이 원빈이 아니었으면 아저씨가 범인인가? 싶었을 것 같다. 영화 아저씨의 영어 제목은 'The Man from Nowhere' 이다. 제목만 봐도 Man의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가 연상되지 않는가.
평소 호칭에 대해서 깊게 생각 해 본적은 없지만 나이를 한 해 먹어가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여러 호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꼭 위의 나열한 호칭 외에도 가족간에도 예를 들어보면 결혼한 부부일 경우
남편 동생은 도련님이라고 높여 부르는데 아내의 동생은 처제라고 낮게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호칭이든 호칭자체는 곧 서열을 나타낸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아가씨나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이젠 5, 60대도 할머니 할아버지라 하기엔 젊어 보이는 분들이 많아 할저씨, 할줌마라는 유쾌하지 않는 혼종의 단어가 생겨난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나도 몇년 후면 마흔이 될텐데 결혼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아주머니나 나름 아주머니를 높여 부르는 여사님 소리를 듣게 되면 기분이 정말 묘할 것 같다. 차라리 '저기요', '이보세요' 라거나 경상도사람인 우리 엄마가 낯선 사람을 '예????' 또는 '보소~!'라고 부르는 것처럼 불러줬으면 할정도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