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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Dec 13. 2021

4. 환불 원정대가 필요해

환불 하는 용기  


 

물건을 사러 갈 때는 발걸음도 가볍고 지갑도 가벼워 짐에도 기분이 좋아 지지만 환불을 해야 할 때는 비대면으로 주고 받고 싶을 정도로 껄끄러운 마음이 든다. 특히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면  물건을 판매하는 직원이 황송 할 정도로 친절 했을 때, 무료해 보이는 표정의 주인이 있는 가게의 첫 개시한 손님이 나일 때, 학원에서 상담 후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를 한 뒤 다음 날 너무 성급하게 결정 해 버린 건 아닌가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를 한다 해도 결국 답은 환불을 하면 간단히 해결 될 일인 걸 알지만 나에겐 전혀 간단하지가 않다. 오히려 복잡한 문제에 속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백화점 후문 진열대에 파는 물건 중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어 살까 말까 이리저리 들어보고 있었는데 직원이 살갑게 다가와서 착용을 권유 했다. 그 가방에는 끈이 두개 였고 포장되어 가방 안에 들어 있었는데 직원이 포장을 풀고 가방 고리에 연결을 해주었는데 그 과정이 번거로워 보여 괜히 옆에서 어색 하게 서 있다가 가방을 받아 들어 착용을 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다른 디자인의 가방 까지 착용 해 본 후 처음 착용 해 본 가방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진열대에는 내가 착용해 보느라 풀어 헤쳐진 포장지와 끈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사려던 가방의 가죽이 조금 찌그러져 있어 새 상품을 달라고 했으나 직원은 재고가 없어 본사로 직접 주문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택배로 받기로 하고 결제를 했고 직원은 서비스로 가방 브랜드의 키링을 무료로 같이 넣어 배송해 준다고 하여 고맙다는 말을 하곤 기분 좋게 카페로 갔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문득 구매한 가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싶은 돌이킬 수 없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럴 수가.. 내가 결제 한 가격의 반 값으로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조금 전에 결제 한 가격도 원래 세일 하던 가격에서 조금 더 할인 해준다고 해서 산 가격인데 그 가격의 반 값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봤다면 누구나 당황 스러울 것이다.


나는 환불을 하고 온라인으로 사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행동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에 ‘백화점과 온라인 가격 환불’로 검색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역시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쓴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 그들도 얼굴도 잘 모르는 타인에게 서라도 환불 하는게 맞다는 공감의 말이 듣고 싶어 글을 썼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커피를 다 마시면 다시 후문으로 나가 환불을 해야지 하고 결심했지만 또 마음 한 켠에선 서비스로 준다는 키링 가격을 더하면 온라인에 파는 가격과 3만원 정도 차이인데 그 정도 값 차이면 괜찮은 게 아닌지 스스로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손에 들고 있던 주소지가 적힌 택배 요청서를 다시 내밀 생각을 하자니 말이 안떨어 질 것 같았고, 직원 분이 너무 친절 하기도 했고, 재고가 없어 본사에 전화를 하면서 내가 기다리니까 빨리 보내 달라고 한 말이 아직 내 기억 한 쪽에 따끈하게 남아 있었기에 꼭 착한 사람한테 나쁜 말을 해야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렇게 나는 두 시간을 앉아서 환불을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했고, 아는 동생의 뭐 어때! 얼른 가! 란 메세지에 용기를 얻어 민망함을 무릎쓰고 직원에게 아무래도 급하게 산 것 같으니 환불을 해달라고 얘기했고, 다행히 직원은 다른 손님을 상대하기에 바쁜터라 나에게 영수증 들고 환불하는 곳으로 가보라는 말만 했다. 왜 환불 하냐고 물어보면 무슨 핑계를 댈지 이런 저런 고민을 한 것이 무색하게 환불은 빠르게 진행 됐고, 나 역시 빠르게 그 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말이지 홀가분 했다.


사실 환불을 한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 한마디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마음이 드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아마 서로 기분 좋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 받으며 나왔던 좋은 기억에서 끝내고 싶은데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환불을 한다는 것은 매출이 다시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판매자도 알고 구매자도 안다. 그래서 살 때보다 덜 친절 해도 판매자는 구매자가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고 구매자도 손해 보는 판매자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하며 넘어 가는 것이 둘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런데 이 암묵적인 룰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환불 하는 과정에서 기분이 상했던 기억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환불을 요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예전 인터넷에서 환불 할 때 데려가고 싶은 연예인, 환불 잘 할 것 같은 이미지의 연예인의 글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도 어릴 적 환불이 필요할 때면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옷 가게 에서 옷을 사면 환불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이미 살 때부터 단순 변심은 절대 환불 안된다고 땅땅 못을 박으며 말하는 가게가 많았기에 옷을 살 때 신중에 신중을 더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가게 주인들도 많은 진상과 한 번 입어서 옷이 늘어나면 되팔기가 어렵기에 그런 것이었겠지만 가게 주인의 말발과 부추김에 성급하게 옷을 산 것 같아 영 찝찝함이 가시지 않을 때면 일부러 말을 잘하는 친구와 함께 환불을 하러 갔다. 살 때는 그렇게 친절하던 가게 주인이 환불 하러 왔다고 하면 손에 들고 있던 비닐 쇼핑 백을 날렵하게 채 가며 표정부터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보이면 심장이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친구는 어디서 들은 소비자 보호법을 이야기 하며 흰 옷도 아니고 넣어준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 왜 환불이 안되냐며 당당하게 주장했다. 친구와 나는 환불 해 줄때까지 계산대 옆에 서 있을 생각이었는데 이미 친구에게 질린 주인은 결국 환불을 해 주었다. 그 친구와 함께 환불 하러 갈때면 정말이지 천군만마를 얻은 것 처럼 든든했다.


환불 원정대를 자처해주었던 친구는 이미 추억이 된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천군만마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아마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머릿속으로 환불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려보며 누군가에게 얼른 가서 환불해!란 말을 듣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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