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여름 더위에 입맛도 없고 가볍게 먹을 음식을 생각하다 샐러드를 배송 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더운 날씨 탓일까. 배송 온 택배 박스를 열어보니 같이 넣어준 아이스 팩이 다 녹아 있어 샐러드가 혹시 상한 것은 아닌지 긴가 민가 하면서도 그날 저녁으로 샐러드를 먹었는데 몇시간 뒤 부터 슬슬 아프기 시작하더니 탈이 나서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집 앞에 신호등 하나 건너면 바로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있건만 이제 것 입원 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적 없고 병원과도 친하지 않아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생각 조차 들지 않았기에 미련하게 버티다 아침이 되자마자 근처 내과로 갔다. 내과에서 위염 소견을 듣고 그렇게 며칠 동안 약과 죽을 다 먹은 날 저녁으로 참아 왔던 온 갖 자극적인 음식들을 생각하면서 배달 어플을 켰지만 아직 속이 진정 되지 않았을 것 같아 죽은 질리고 그렇게 또 샐러드를 먹었더랬다.
그런데 이번엔 급체를 한 것인지 갑작스러운 복통에 몸에 힘이 쭉 빠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게 아닌가. 이렇게 가는 건가? 혹시라도 잘 못돼서 엄마가 자취 집에 와 보면 내 방 꼴을 보고 기겁을 할 텐데.. 정신 없는 순간에도 엄마의 표정을 떠올리며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얼마전 일로 이제 아프면 미련하게 참지 않고 응급실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아님 병원까지 걸어가는 것이 나을지, 구급차를 부르면 입구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인지, 어기적 어기적 어설프게 구급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잠시 고민 하다 가까운 거리니 조금 참고 걸어가보자 싶어 얼른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참 신기한 것은 집 밖을 나서니 갑자기 몸이 괜찮아 진 것 같고 내가 아팠던 것이 맞는지 긴가 민가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병원으로 가 접수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금단의 문이 열렸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응급실 환경이 눈 앞에 펼쳐 졌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긴급하고 급박한 상황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베드를 안내 받고 누워 있으니 간호사 선생님이 증상을 물어보셔서 급체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호자랑 함께 오셨어요?’
-아뇨
‘임신 가능성 있으세요?’
-아뇨
혈압 체크를 하고 잠시 대기 하고 멍하니 누워 있는데 질문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다.
보호자.. 임신 가능성..
주변에 아직 결혼 안한 언니들이 몇 있기도 하고 한 참 어린 동생들과 주로 놀다 보니 결혼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사실 서른 다섯이면 한 번 갔다 왔어도 이상할 게 없고 애가 둘 이어도 그러려니 할 나이가 맞긴 하다. 나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낯선 곳에서 훅 들어 온 내 나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것 저것 체크를 해주셨는데 끝난 줄 알았던 질문이 다시 나왔다.
‘임신 가능성 있으세요?’
-아뇨..
‘혹시 임신 가능성 있는지 소변 검사 한 번.’
-아뇨. 진짜 없어요.
의료적 소견이겠지만 내가 거짓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을 물어보는 것인지 어쩐지 억울한 마음까지 들어 나는 속으로 ‘없어요 없다구요! 진짜 없어요!!!하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아마 내가 그때 정말 임신을 하고 있었다면 어디 이름 모를 실험실에 잡혀갔을 것이다. 자가 임신 가능한 최초 인류이니 말이다.
그렇게 수액을 맞고 두어 시간 있다 보니 몸이 한 결 괜찮아져 담당 선생님과 상의 후에 진료비를 수납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 날 응급실을 다녀와서 느낀 게 있다면 혼자 침대에 꼼짝 없이 누워 있는 시간은 참 외롭고도 외로운 시간 이었다는 것이다.
10시가 넘어 온기 없는 집으로 돌아와 나이 대 별로 정의 해 놓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반대로 살고 있는 내가 이대로도 괜찮은 것인지 사뭇 진지한 고민을 하며 잠이 들었던 참 고독한 밤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