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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Dec 06. 2021

2. 모녀전쟁

never ending

(제주 전이수갤러리)



엄마와의 말다툼은 매번 같은 패턴으로 시작 되는 걸 알면서도 한번 시동이 걸리면 멈출 수 없다.

마치 누가 더 상처 주는지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청개구리가 되어 엄마의 화를 돋우고 엄마는 그런 내 말에 더 화가나 폭격을 쏟아 붓는다. 이번 명절에도 예외는 없었다.


사실 기차를 타고 본가에 내려갈 때면 창 밖을 보며 예상 가능한 엄마의 잔소리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몇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딸에게 왜 매번 도돌이표 같은 잔소리를 늘어 놓는 것인지 떨어져 산 날이 많아 일상적인 할 말이 없는 걸까 싶다가도 어쩌다 한 번 전화해서 통상적인 안부를 묻는 살갑지 않은 내가 서운해 할 입장은 또 아니다 싶어 엄마를 이해해보려고 하다가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벌써 서른 중반이 되어버린 나이지만 엄마 입장에서 나는 아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와 같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못 미덥고 답답할 것이다. 이제는 세상물정에 더 밝아진 내가 엄마를 어란아이처럼 걱정하듯이.


엄마의 잔소리에는 단계가 있다. 우선 같이 티비를 보며 지나가는 소리로 얘기하는 가벼운 잔소리는 방어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스갯소리로 사주를 봤는데 마흔 넘어서 해야 한 다고 하더라 그때까진 결혼에 대해 터치 하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면 엄마도 웃어 넘긴다. 만약 이때 농담이 통하지 않으면 재빨리 남동생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면 된다. 미안하지만 남동생도 엄마의 걱정거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중상 정도의 타격을 입는 잔소리가 시작 되는데 아직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직장 이야기로 넘어갈 때다. 경력은 쌓였지만 정규직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장의 액수가 뿌듯한 것도 아니고 월급으로 그때 그때 입에 풀 칠 할 정도지만 그래도 없으면 없는 대로 아끼고 쓸 땐 쓰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정도로도 만족하건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집을 마련하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10년 전 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 엄마는 욕심 없이 사는 내가 못마땅 한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안정 적인 직장과 결혼과 자식이 있는 나인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은 무엇인지 엄마는 알까?


이런 모녀 사이의 가장 치명적인 주제는 바로 나의 대학 이야기인데 이유는 간단 하다.

나의 최종 학력이 고졸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귀에 인이 박힌 엄마의 음성은 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음성 지원이 되는데 그 날도 어김 없이 시작 되었고, 결혼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대학까지 차례가 왔다.


“요즘 세상에 너처럼 대학도 안나 오고 고졸로 있는 사람이 누가 있노. 세상 천지에 다 대학 나오고 하는데 내가 선 자리가 들어와도 저게 대학 안 나왔다 말도 못하고 다 니 대학 나온 줄 아는데 어떡해 할래?”


나는 이상하게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소파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방송통신대인지 뭔지 그거는 잘 듣고 있나?” 엄마가 물었다.


나는 회사와 병행하기 힘들어서 한 학기 쉬고 있다고 하자마자 엄마는 갑자기 크게 소리 쳤다.


“도대체 뭐하나 끝까지 하는게 없나? 대학도 가다 말고 허송세월만 몇 년에 방구석에 쳐 박혀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저것도 자식이라고”


시간을 돌려서 이때 내가 참았더라면 우리는 보통의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참지 못했다.


나는 언제까지 대학 얘기를 할 거냐며 사십이 되고 오십이 돼도 대학 얘기로 괴롭힐 거냐며 대학 나오지 않아도 직장에서 돈 벌고 있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니냐고 소리쳤다.

엄마는 지지 않고 어디 가서 딸이 대학 졸업 못했다고 창피해서 말도 못하는데 그게 뭐가 대단하냐며 반문했다.


대학에 대하여 물론 나도 콤플렉스가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한테 거짓으로 꾸며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작 내 학벌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던가.

순전히 엄마의 자존심 때문이면서 그 화살은 오롯이 나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나는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방을 챙겨 다시는 집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는 무작정 문을 열고 나갔고 엄마는 등 뒤에서 오지 말라며 소리 쳤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자 근처 카페로 들어 갔다. 연휴라 그런지 카페 안에는 사람이 많았고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앉자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졌다.

애써 눈물을 가라 앉히려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누나 엄마가 집 나간대. 다시 집에 들어와도 돼.’


나는 엄마가 나가는 이유를 너무나 알 것 같아서 또 눈물이 났다.


우리 가족은 불과 몇 십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길래 샀다는 샤인머스켓 한 박스에서 한송이를 골라 동생과 나눠 먹고 있었고, 엄마는 저녁에 어떤 국을 끓여 줄까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때를 봐서 엄마에게 주려고 산 작은 선물을 줄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조금만 더 참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집으로 다시 돌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날 겨우 잡은 기차표로 서울 자취 집으로 돌아왔고 새벽까지 울다 지쳐 잠들었다.


사실 나는 다음날 엄마에게서 먼저 전화가 올 줄 알았으나 연락은 없었다. 먼저 전화를 할까 했지만 이상하게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상처가 컸던 것인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2주가 지난 화요일 저녁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니도 속상 할텐데 자꾸 얘기해서 미안하다. 엄마가 이제 대학 얘기 안 할게..”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기어코 엄마에게 먼저 사과를 받아내는 내가 참 못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몇 번 엄마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고 나는 정확히 두 달 후에야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나는 엄마와 나의 전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결혼 한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서로 어떤 말을 하면 기분이 상하는지 알면서도 조심하지 않고 매번 같은 주제로 싸움이 시작 된다고 하는데 아마 내가 독립 하지 않았으면 역할만 다를 뿐 엄마와 나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게 나은 관계다 싶으면서도 나는 엄마가 좋다.

사실 엄마는 미워도 서운해도 속상해도 늘 그립다.

세상의 모든 딸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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