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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Mar 16. 2020

남는 음식 처리반

옛날에 속 모르고 나는 어머니에게 자주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남는 거 드시지 마시고 좀 제대로 해서 드세요.


   

늘 가족이 먹고 남은 음식을 점심 때나 식사 뒤에 드시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려 그리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머니를 위하는 것인지 알았다. 


그런데 남는 음식을 먹는 이유야 뻔하지만, 요즘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껴본다. 

코로나 19로 바깥출입을 최대한 줄이며 딸아이와 함께 보내다 보면,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유치원에 다녔을 때는 점심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엔 필수가 되었다. 특히 내가 딸아이 버릇을 잘못 들여서 그런지... 아침에 먹었던 음식을 두 번 이상 먹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것을 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매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 달리, 음식이 남게 된다. 


나는 음식 쓰레기 버리는 것을 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어쩔 수 없이 너무 많아서 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는 것을 제외하고, 가능하면 먹지 못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다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럼 일반 쓰레기를 버릴 때 못 먹는 뼈라든지 껍질만 버리면 되니까. 

어쨌든 코로나 19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개학이 늦어지고 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매 끼니마다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늘 음식이 남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나 홀로 포식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고 무식하다고 할 것이다. 


딸아이가 주말에 토마토 수프가 먹고 싶다고 해서 적당한 양으로 만들었는데, 마지막 한 그릇 분량을 남겨 놓고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고 하여 결국에 남겼다. 딸아이는 더 이상 토마토 수프가 끌리지 않는다며 참치죽을 요구했고,,, 나는 결국 참치죽을 만들어 주고 남은 토마토 수프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토마토 수프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라고... 아니, 그냥 먹을 수 있게 만들까였다. 

바게트라도 있다면 그냥 수프를 데워서 먹으면 되지만 일단 빵이 없고, 만들 수는 있지만, 남은 토마토 수프를 먹을 요량으로 빵을 만들기엔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쌀국수를 어떻게 넣어서 만들어 먹어보자 싶었다. 


무조건 쌀국수를 넣고 끓였는데, 맛을 보니... 역시나 부족함이 많았다. 오히려 스파게티 면을 넣었다면 좋았으려나? 엿을 넣지도 않았는데 맛에서 엿의 풍미가 났다. (ㅋㅋㅋㅋ) 

어쨌든 맛이 없어서 잘 쓰지 않는 조미료를 넣어서 맛을 내었는데, 정말 이상한 맛이 탄생했다. 

동서양이 분쟁하면 나올 법한 맛?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된장을 넣어볼까? 고추장을 넣어볼까?를 고민하다가 특단의 조치로 매운 청양고추를 세 개나 썰어서 넣었고, 거기에 멸치 다시다를 좀 더 넣고 맛을 보니 훨씬 나았다. 

다시 말해서, 이상한 맛을 조미료로 범벅을 한 셈이다. 


안 그래도 맛이 이상한데 그냥 냄비 채로 먹으려니 조금 처량해 보여서 하얀 그릇이 옮겨 놓으니 그럴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치 캔을 하나 얹었는데, 그제야 그럴싸하게 친숙한 맛으로 돌아왔다. 

엿의 풍미가 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마치 볶음면을 먹는 맛이었다. 



아쉬운 대로 먹기 시작했는데, 딸아이가 그게 뭐냐고 물어봐서,, 네가 먹고 남은 수프를 이용해서 만든 건데 먹어볼래?라고 했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아니요, 됐어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자기가 보기에도 딱히 맛있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더하는 말이. 

아빠, 남는 거 드시지 마세요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했던 말과 유사했다. 

보통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데, 갑작스럽게 내가 좀 처량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이런 말을 하면서... 

딸, 네가 남겨서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란다


사실은 그런 말도 핑계일 것이다. 그냥 내가 알아서 먹기 싫으면 버리면 그만 일 텐데,, 왜 그렇게 청승을 떨었을까? 

아마도 남은 음식이 정말 아까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마토 수프에 생토마토 2개나 들어갔고 베이컨에 다양한 야채와 허브를 넣어서 맛있게 만들었는데, 재료값을 생각해도 요즘 물가가 높다 보니 매우 아깝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나도 어느새 내 어머니처럼 변하고 있는 모습에 좀 기분이 그랬다. 


그러고 보면 집안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마도 돈이 많아도 나는 이럴 거라 생각을 해 본다. 


음식 재료를 구입하고, 다듬고, 씻고, 자르고, 재료를 익히고 요리를 하고, 그리고 먹기 좋게 음식을 내오고, 혹시라도 떨어진 머리카락이라도 있을까 재차 보며 식구에게 식사를 준비하는데,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일종에 의무감이 서려 있는 성스러운 행위와도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인지 남기는 음식이 유독 아깝게 느껴진다. 아마도 내 어머니도 그러지 않았을까? 

요즘은 아이와 있는 동안은 점심을 적게 먹는다. 결국엔 남길 테니 남은 음식 처리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저 코로나 19가 빨리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전에 대파 한 단이 2천 원이었는데, 한 단에 대파 대는 총 8대였다. 

오늘은 대파 한 단이 2천8백 원이다. 그런데 한 단에 들어 있는 대파 수는 총 7개였다. 

도다리 쑥국을 해 먹고 싶어서 마트에 갔더니,,, 한 줌도 되지 않는 쑥이 2천7백 원 때다. 도다리 두 마리에 1만 원, 쑥 2천7백 원, 여기에 육수 낼 때 들어가는 멸치, 다시마, 청고추, 파뿌리, 파, 등등, 그리고 물, 가스, 공임비, 설거지까지 생각하니... 그냥 사 먹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쑥으로 손이 갔다가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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