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도 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흔히 아이들끼리 잘 놀다가 자신이 불리하면 상대를 폄훼하거나 기분 나쁘게 만들거나 하는 모습,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라 본다.
나도 학교에 있을 때, 나를 험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지 않으려고 대들기도 했고, 하나하나 따지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남는 것은 그 험담이 진실이 되어 버리고 나 자신은 전에 있지 않았던 이중적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를 험담하는 그 사람도 나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에 험담을 했을 것이고,
나 또한 험담을 들은 상태에서 나의 진실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억울하여 따졌던 것인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지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라 본다.
지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승복하게 되면, 상대에게 한없이 밑에 놓인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이긴 사람은 당연하게 자기 밑에 두려 한다. 이런 주종 관계를 바라는 이긴 사람과 그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는진 사람 간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집에서도 자식은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은 교사의 말을 따라야 하고,
군대에서는 상사의 말을 따라야 하고,
조직에서도 상사의 말을 따라야 하고,
심지어 은퇴 후 양로원에 가서도 선임자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인간은 어쩌면 이런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인데, 정작 허울좋게 평등을 언급하며 정치며 사회는 외쳐댄다.
솔직히 이 세계가 종말 이전까지 주종 관계는 어떤 형식으로든 늘 존재할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주종 관계에서 어떤 위치가 더 나은 것일까? 아니, 주종 관계도 보면 갈등이 없는 경우를 살필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리될까?
역사를 통틀어 반복되는 모습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주는 솔선수범하고, 모든 책임을 지며, 자신의 주가 되었음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종을 안고 이해해야만 하며, 종의 충언을 새겨 들어야 한다.
종은 종의 위치에서 솔선수범하고, 주의 뜻에 공감하고 동행해야 하며 가끔은 주의 안일함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지적했다 해서 다른 생각 말고 원래의 위치에서 주를 돕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자 마음가짐이다.
다시 말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를 생각함에 경계 없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정작 많은 강연에서 리더십을 이야기하지만, 일방적인 면만 강조할 뿐, 쌍방의 면을 살필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동시에 상호적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관계 형성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도 된다.
내 딸아이는 나와 함께 윷놀이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지면 골을 내는 딸아이가 귀여워서 못된 마음에 더 놀리기도 한다. 그러다 지면 우울해하는 딸아이에게 미안해서 다음 번 게임에서 연이어져버린다. 그러다 딸아이가 이렇게 물어본적이 있다.
"아빠, 지면 화나지 않아요? 나는 화가 나는데, 아빠는 왜 즐거워요?"
"게임이잖아. 게임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잖아. 질 때마다 매번 화내면 힘들지 않을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딸은 질 때면,,,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방법으로 순화시키고 있다.
물론 사회생활에서 부딪히는 일과 이런 소소한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근본은 같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 누리지 못하거나 상실감을 가져본 사람이거나 늘 가지며 살았던 사람은 늘 가지려고 애를 쓴다. 즉 이타심이 결여된 사람일 경우 그 정도는 더욱 더 심각할 수 있다.
가진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뺐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로 인해 가진 사람은 가진 것에 행복해하고 쾌락을 느끼며 자신의 자존감을 재확인하는 재미 속에 살아가겠지만, 무엇인가를 빼앗긴 사람은 순간 불행해지고, 불쾌하고, 심지어 복수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면 분명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빼앗겨 본 사람의 여유라는 타협으로 인해 달라지기도 한다.
빼앗긴 사람은 여러 경험에 의해 힘든 상황에 적응하려 하고 결국엔 무던해지려고 노력하고 그만큼 무던해 진다. 그리고 복수심보다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어 살아간다. 이것이 여러 번 빼앗겨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반면, 뭔가를 뺐는 사람은 자신이 누린 행복과 쾌락은 일시적인 탓에 계속해서 그것을 맛보려 하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가지지 않으면 자시만의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위선이라는 탈을 쓰고 정도를 넘어서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게다가 위선이라는 탈을 썼기 때문에 자신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탓에 결국엔 스스로가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결국엔 빼앗으려는 사람은 늙어서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빚을 지게 된다. 아쉬운 것은 그것을 빚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만함 때문에 늘 자신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게 태반이다. 그래서 남의 것을 뺏는 사람은 죽기전까지 남의 것을 탐하게 된다.
제목에서는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어린 마음이라 말을 했지만, 어쩌면 틀린 말일 수 있겠다. 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본능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정작 어린 마음은 지든 이기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더욱더 아쉬운 것은 뺏는 사람은 배려심까지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은 철저하고 위선 뒤에 숨어서 남을 배려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