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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Oct 15. 2020

딸아이 vs. 가정주부 아빠

미운 여덟 살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래도 아빠 아빠 하면서 작은 손이 내 손을 잡을 때면
화로 충만했던 마음이 금세 사그라진다. 


이 모습이 요즘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말을 잘 듣다가도 가끔은 엉뚱한 일을 버리고,,, 그저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을 뿐, 또다시 이어지는 반복... 이젠 그때마다 화를 내기도 지쳐간다. 

아이의 이성적, 논리적 회로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수없이 반복되다 보니 내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제한적인 생활은 더욱더 힘듦을 가중시킨다. 

물론, 사회생활하는 바쁜 아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만, 근본적으로 아이의 눈에 비치는 아빠와 엄마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본다. 뭐랄까... 성적 공유 대가 틀리다고 봐야 할까? 


매번 엄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매번 유하게 할 수도 없는 요즘, 마치 나 자신을 시험하듯이 도마에 올려진 듯한 느낌이 든다. 


하루 24시간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쓰이는 일이라면 역시나 딸아이의 행동이다. 솔직하게 속내를 말하자면, 하루 종일 지루하고 내용이 위태로워 보이는 관찰 TV를 보는 느낌이랄까. TV 라면 채널을 돌리겠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한동안 이런 현상이 더 유지될 것이라 보지만 속마음은 어서어서 변화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선다. 아마도 딸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력이 되고, 나아가 사춘기를 맞이하면 지금과 또 다른 모습을 나에게 보여줄 것이다. 아이 교육에 대해 늘 초보인 나에게는 앞으로 남아 있는 그 숙제가 너무나도 큰 산처럼 여겨진다. 


문득 내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늘 바빴던 내 부모님은 지금의 나의 육아방법과 달랐는데, 그때의 부모님도 나를 키우느라 많이 힘드셨겠지만, 현실 육아를 하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이 더 힘들게 여겨진다. 




그리고 아이는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다. 모든 질문에 답을 해 주고는 있으나 가끔은 조용한 순간이 필요할 때 딸아이가 불현듯 질문을 할 때면 적잖이 내 가슴이 요동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집중해서 논문을 쓰고 있는데 우다다다 달려와서 뜬금없이 "아빠, 이거 뭐예요"라고 물어본다. 그때면 솔직히 생각의 흐름이 끊어진다. 만일 가족이 아니라 남이었다면 내 성질에 분명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는 순간, 한숨이 나오면서 애써 혼자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어이, 니 딸이 너보고 좀 쉬란다'라고...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거 뭐예요가 아니라 정확하게 질문을 해야지,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아빠에게 물어보면 모른척하고 말 안 한다. 알았지?" 그렇게 터무니없이 질문을 해대는 딸아이에게 훈계하는 순간에 약간의 나의 서운함을 실어 보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은 갑작스러운 질문이 많이 줄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믿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라 지금 당장 개선되고 좀 더 나은 것을 바란다. 


달리 생각해 보면, 매일같이 딸과 주부 아빠의 시끄러움 속에서 아이는 커갈 것이고, 주부생활을 하고 있는 아빠도 조금은 더 성장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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