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평가하는 두 가지 기준

by 공삼

이래저래 2달간 현장직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은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상대에게 나도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진 또 하나의 사람이다.

최근에 현장 일을 하면서 아주 특별한 트러블을 겪은 적이 있다.

힘든 일을 하면서 누군가는 솔선수범하며 맡은 바 일에 충실하게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 누군가는 늘 편한 일만 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를 불러서 같이 하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할 때는 함께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물론 체력이 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고는 보이지만 현장에서의 일은 반복적인 일 때문에 힘은 들지만 대부분 성인이면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누군가를 평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평가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로 판단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로 관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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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

이 유형의 사람은 관계를 ‘거래’처럼 바라본다. 좋게 표현하자면, 비즈니스 마인드랄까?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멀어져야 할 사람으로 구분한다.

이 기준은 빠르고 명확하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점점 얕아지고 계산적으로 변한다.

왜냐하면 ‘받지 못하는 순간’ 그 관계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조건이다.



반면, 주는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

어떤 사람은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시간일 수도 있고, 관심일 수도 있고, 작은 도움일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은 관계를 ‘쌓아가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당장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쉽게 관계를 끊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 주변에는 결국 사람이 모인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사람’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문제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인간관계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세상은 늘 부족하게 느껴지고, 받지 않는 순간 불편감과 함께 분노가 생겨난다.

그런데 주는 것에 익숙해지면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게 보인다. 그리고 받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전자의 불편한 심리적 현상을 크게 겪지 않는다.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사람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만 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주고 있는가?


관계는 결국 거울과 같다.

내가 먼저 내밀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다.

오늘 하루, 단 한 사람에게라도 무언가를 ‘주어 보는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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