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 a sketch. 1
마지막으로 봤던 너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처음으로 봤던 모습이었어.
아직도 나는 현관문을 열고 닫히는 걸 볼 때면 너의 붉혀진 눈시울과
고개를 떨군 체 문을 열고 나가는 너의 뒷모습이 보여서 나를 괴롭혀.
남자는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상자 속에 담으며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옷장 속을 열었을 땐 3년 동안 살았던 집이어서 그런지 옷들이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언제 다 담을지 걱정이 밀려와 남자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는데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의 성격 덕분에 방 안에는 차라리 이사 가는걸
포기하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상자에 담아야할 물건들로 가득했다.
혼자서 이삿짐을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았기에 남자는 한숨을 쉬며 쓰러지듯이
바닥에 누웠고 주머니 속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며 메신저들을 확인했다.
친구들의 메시지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쓸 때 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했기에
금세 꺼버리곤 자리에 일어나려다 침대 밑을 청소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침대 밑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가져와 몸을 숙였고 가득 쌓인 먼지들 속에
꽃 모양 장식이 된 머리끈과 여자의 머리카락들이 빗자루에 쓸려 나왔다.
남자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운 표정만 보였고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손으로 먼지가 묻어있는 머리끈을 털어내며 그 자리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이사를 가기 위해 짐들을 정리하고 상자 속에 담으면서 너와 관련된 물건은 하나도
없길래 이제야 너와 함께했던 추억이 서린 물건들은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어.
너와 관련된 물건들을 버리고 나서부터 너를 생각나게 할 것들이 없어지니까
언젠가부터 보고 싶다거나 너의 주위를 스치듯이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너의 물건을 마주하게 되니까 너무 당황스럽고 괴롭네.
난 아직도 네 생각이 나면 그때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서
마음 한 곳이 꽉 막힌 듯 가슴이 답답하고 누군가 목을 조르듯 숨쉬기가 힘들어.
이사 가는 데는 다른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너로 인해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나 혼자만 아픈 것 같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서,
널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에 만약 내가 문을 열고 나갔다면 네가 거기 서있었을까 봐
내가 널 붙잡지 않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나의 발목을 항상 잡아서 도망가는거야.
내가 너로부터 그리고 추억이 가득한 이 집으로부터 도망가는 거나 다름없어.
너 때문에 난 항상 지금처럼 바쁘게 지냈는데 아직도 이렇게 나를 괴롭히네.
그래서 너도 나처럼 내 생각이 날 때면 마음 한 곳이 바늘에 찔린 듯 따끔거리고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땐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어 졌으면 좋겠다.
나와 관련된 물건을 버리고 싶어도 망설여지는 마음에 주저앉았으면 좋겠고
이런 말 밖에 못하는 내가 너무나 싫지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물건을 담고 있는 상자들을 모두 밖으로 꺼낸 남자는 방안에 놓고 오는 물건은 없는지 살펴보았고
남자가 나간 문이 닫혔을 때 침대 밑에는 꽃 모양 장식이 된 머리끈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