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 a sketch. 8
방 어디선가 울리는 벨소리에 남자는 이불을 발로 차며 일어납니다.
어제 새벽까지 마시고 들어온 술 때문에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게
벗어둔 외투의 주머니를 잠시 뒤적거리더니 이내 발견한 핸드폰을 꺼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이름이 보였고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
한참 전부터 깨있던 사람처럼 목소리를 바꾸며 전화를 받기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의미 없는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에게서 오늘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 28일에 한다고 하던데? 그게 오늘이었어? '
' 넌 뭐 그리 바쁘게 살길래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고 사는 거야. '
잔소리처럼 쏘아대는 친구의 말에 남자는 더욱 머리를 부여잡기 시작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몸이 너무 무거웠기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 그런데 나 오늘은 너무 피곤하고 상태가 안 좋은데... '
'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그런데 오늘 혜진이 온다더라. '
' 혜진이가 온다고? '
' 처음에 안 온다고 했는데 내가 오늘 너 올 거 같다고 하니까 말을 바꾸더라고. '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며 되물어 보기 시작합니다.
남자의 행동에 친구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지만 이내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 쨌든, 오늘 5시까지 꼭 와라. '
전화를 끊자마자 남자는 시간을 확인하고 급하게 씻기 시작합니다.
옷장 속에 박혀있던 아끼던 옷을 꺼내어 입고는 마치 소개팅이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설레는 모습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거울을 보며 옷과 머리를 만집니다.
집으로 나와 편의점에 들러 아직 남아 있는 술기운을 없애기 위해 산 숙취음료를
계산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마시며 남자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말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남자는 생각합니다.
그때의 나는 너와 애매한 사이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연락하기가 망설여질만큼 어렸고
지금의 나는 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잊혀진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늦은 것 같았어.
그저 친구들에게 너의 연락처를 물어보기만 했어도 됐을 텐데.
일이 바쁘고 시간에 치이고 여유가 없이 산다는 이런저런 핑계가 머릿속에
너무 많아서 그동안 너에게 연락 한번 하기가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어.
그러면서도 그 시절의 너와 지금의 너는 얼마나 똑같고 다를지 궁금해.
긴 생머리에 웃을 때 보조개가 어렴풋이 보이던 너의 미소는 그대로 일지
짓궂은 장난을 칠 때 얼굴이 빨개져 눈시울이 붉어지던 너는 얼마나 변해있을지
누구나에게 친절하고 소심하면서 낯을 많이 가리던 성격을 가진 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남자는 가게 앞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고 가게 밖 유리창에 비친
친구의 뒷모습이 보이는 테이블로 가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남자를 부릅니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말을 걸어온 여자의 모습에 남자는 순간 당황해 얼어붙은 체
여자를 바라보다 머릿속에서 정리해뒀던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담은 한마디를 남자가 건넵니다.
'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