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이제 지워도 돼.
너도 사실 다 알고 있잖아.

Draw a sketch. 33

by 공선호

' 어때 조금 따뜻한 거 같아? '


남자는 편의점에서 방금 막 사온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건넵니다.


' 나 캔 커피 안 마시는 거 알잖아. '

' 아 맞다. 다른 걸로 바꿔올까? 매실음료는 어때?

아니면 꿀물 같은 거는? 거기 보니까 두유도 있던데 바꿔올게. 말만 해. '


남자의 무안하게 건네진 오른손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고 여자의 대답을 기다린 체 가만히 서있습니다.


' 아니야 괜찮아. 딱히 마시고 싶은 게 없어. '

' 그래도 추울 땐 따뜻한 거라도 마시면 괜찮아

아니면 이렇게 주머니 속에 넣어둬도 얼마나 따뜻한데. '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었던 캔커피를 여자의 외투 주머니 속에 남자는 넣어줍니다.


' 그러면 이거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을게. '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여자의 말에도

남자는 꿋꿋하게 여자의 옆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겁니다.


' 여자 친구가 캔커피 안 마시는 거도 알면서 사 왔네. 난 진짜 바본가 봐 '


사람 좋은 웃음으로 여자의 반응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에도

여자는 남자가 아닌 어딘가에 시선이 머문 채로 한숨 아닌 한숨을 쉽니다.

뿌옇게 나오는 입김을 본 남자는 어렴풋이 여자가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모른척하면서 여자의 옆에 앉아 다시 무슨 말이라도 꺼냅니다.


' 아 맞다. 어제 핸드폰 정리하려고 뒤적거리다가

예전에 우리같이 찍었던 사진들을 봤는데 되게 기분이 묘하더라.

그러면서 우리 참 밖에 놀러 많이 다닌 것 같았어.

작년 이맘때쯤에는 스키장 놀러 갔었지 않나. 너 진짜 스키 못 타던데. '


장난기 섞인 말에도 여자의 굳어있는 얼굴을 변화시키긴 힘들어 보입니다.

그저 대답을 듣고 싶었던 남자에게 여자는 한숨 쉬고 하얀 입김만 보여줍니다.

멍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던 여자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남자는 여자 앞으로

자리를 옮겼고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여자는 시선을 바닥으로 바로 옮깁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입을 닫아뒀던 여자가 드디어 남자에게 말을 건넵니다.


' 그거 이제 지워도 돼. 너도 사실 다 알고 있잖아. '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여자는 그런 말을 바로 앞에서 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며 둘 사이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던 남자의 모습이

그리고는 금세 자기가 다 미안하다고만 말하는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이 쓸 때 없이 착하기만 한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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