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냄새가 날 때면

Draw a sketch. 71

by 공선호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더라

다음 달이 추석인걸 보면 당연한 건가

저녁 늦게 맥주라도 한 캔 하려고 편의점에 나가려는데

밖에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외투 하나 걸쳐야겠더라고

그래서 오랜만에 가을 옷을 담아둔 상자를 꺼냈는데 몇 벌 없더라

그 몇 벌 없는 옷 중에도 입을만한 건 하나밖에 없는 게 신기했어


하나씩 꺼내보니까 무릎 부분이 다 늘어난 운동복 바지에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긴팔 티셔츠 하며

이걸 어찌 입고 다녔는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색깔의 옷들

그걸 입고 있는 내 예전 모습이 생각나서 부끄러워지는 거 있지?

넌 어떻게 그러고 있는 내 옆에서 있어준 건지 궁금하다


그 와중에 입을만한 가을 옷 하나

그게 네가 나한테 선물해준 거였어

나한테 예쁜 옷 좀 사 입으라고 잔소리하다 네가 답답해서 선물해준 거였지

그때 생각해보면 난 왜 그렇게 옷을 못 입었던 걸까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물어보더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너랑은 아직 잘 지내고 있냐고

웃으면서 손사래 쳤더니 코웃음 치면서 너도 참 대단한 아이였다더라


누가 봐도 네가 아까운데 왜 나 같은 놈이랑 연애를 하고 있냐고

이 녀석 뭐가 그렇게 좋다고 맨날 붙어있으려고 노력하냐고

그러면서 제일 웃겼던 게 내가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다더라

그걸 자기네들한테는 꽁꽁 숨기고 있는 거 아니냐면서

이상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보여주더라고


그러다가 연락은 그래도 하고 있냐고

다시 만나고 싶거나 그립지는 않냐길래

절대 그럴 생각 없다고 말했어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너라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다시 만나게 되면 혹시나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까 봐

난 그게 싫어서 지금의 모습으로 네가 남아주길 바라거든


지금이라도 버려야 할 거 같아서 헌 옷 수거함에

넣을 옷들을 정리하는데 그때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던 거 있지

너하고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던 계절이라서 그런지

가을만 되면 내가 좀 감성적으로 변하는 거 같더라고

그러다가도 춥다고 느낄 때쯤이면 금세 잊어버릴 텐데

이런 걸 보고 가을 탄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스쳐 지나간 바람에서 낙엽 냄새가 날 때면 생각이 나는

내 머릿속에서 가장 예쁜 사람으로 남아있는 너는 지금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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