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하고 성에 관해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청년이 되었다.
필자는 연애를 할 때면 항상 무뚝뚝한 아이가 되곤 했다.
이성이나 연인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표현이 서툴다’, ‘익숙하지 않다’ 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손을 잡거나, 애칭으로 부르기, ‘사랑해 ’라는 표현을 자주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는 왁지지껄하게 놀거나 스킨십도 스스럼없이 하는 해맑은 아이였다. 특히 스킨십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친구들과 산을 타거나 운동, 싸움놀이를 하는 방식으로 몸의 대화를 통해 빨리 친해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유독 연애를 할 때는 그런 방식과 표현이 조심스러웠다. 다른 결의 스킨십과 표현방식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었다.
‘왜 그럴까’라고 자문해보니 ‘사랑해’라는 언어적 표현을 크게 주고받지 않은 채 살아왔던 터라 표현을 하지 않은 사랑과 관계에 익숙해져 버렸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도 애정표현을 아끼면서 지내왔다. 부끄럽지만 필자 인생에 있어서 부모님께 형제들에게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한 마지막 순간이 기억이 안 날 정도면 정말 표현을 안 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감정표현을 절제하면서 살아왔다. 장남부터 시작해서 반장, 회장 혹은 리더의 역할을 많이 수행하다 보니 나 개인의 감정을 억제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오랫동안 가진 채 지냈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큰 내색을 하지 않고, 가족* 교우관계를 형성해 왔다.
애정표현에서 나아가 주변 지인들과 성에 대한 농담이나 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나 청소년기에 충분하게 받지 못한 성교육으로 인해 성가치관에 대한 확립이 되지 않은 채 성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무지하다는 생각을 나이를 먹을수록 하게 되었다. 성병, 피임, 임신, 체위 등 필요한 주제의 이야기를 제대로 공유할 사람이 없었고, 무지한 채로 살아갔다. 경험부족의 원인도 있겠지만 다양한 피임기구 특히, 제품별 콘돔의 차이에 대해 크게 인지하지 못했었고, 항상 죄짓는 거 마냥 편의점이나 약국에 들러 성인용품을 구입했다. 필자는 무지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는 동생이 덜컥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필자도 임신과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전 일이지만 그 당시 어렸던 나는 기쁘지만서도 당황스러운 임신 소식이 주변에 처음 일어났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당사자를 통해 그 무게에 대해 깊이 체감하게 되었고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친동생, 부모님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친구들과 연애에 관해 많은 점을 공유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다양한 방식과 표현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와 같이 표현을 자제하고, 때로는 남자다워야 하니까 그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사람도 있는 반면, 그냥 마냥 쑥쓰러워 사람도 많은 반면, 차고 넘쳐흐를 때까지 끊임없이 표현하고, 감사해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멋있다, 예쁘다, 잘 어울린다 등 아낌없이 말로써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대게 관찰해보면 부모님, 친척, 친구들에게 항상 고맙다,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많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모든 게 좋아질 거야’, ‘사랑한다’ 등의 표현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표현처럼 어느새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표현을 받을 줄만 알았지 주는 법을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표현을 잘 하는 친구들의 행동을 오랜 시간 관찰해 보았고, 표현에 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눠보았다. 사소한 작은 행동 하나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입 밖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사실 여러가지 면에서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툰 모습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때로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비춰질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색할 뿐, 그 어색하던 말 한 마디가 내가 내뿜는 에너지를 바꿔주고, 상대방에게 힘을 주며 나아가 나의 가치관과 사고방식까지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노력하며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포옹으로 인사하는 친구가 되어있었고, 사소한 배려에도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아이가 되었으며 엄마와 장을 보러 갈 때 손을 꼬옥 맞잡는 아들이 되었고, 친구들과 성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 또한 필자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콘돔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인들과 성인용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피임은 우리 생활 속에 가까이 녹아져 있는 부분임에도 대화주제로 꺼내기 어려운 주제였지만 그런 나를 변화시켜 주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콘돔 프로젝트 이야기를 공유하였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다음은 필자의 대학교에서 스타트업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필자가 콘돔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연인과 함께, 결혼생활동안에 나아가 자식에게까지도 이런 대화를 서스럼없이 건강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를 넘어 내 주변 사람들이, 더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콘돔을 단순히 선정적으로만 생각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건강한 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대한민국도 성에 관해서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