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마켓으로 뛰어들어봐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소비자가 구매를 한다는 것은 동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니즈가 명확하다고 확신하더라도 직접 팔아보기 전까지는, 소비자의 피드백을 들어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다.
과정 속 모든 선택은 우리들의 프레임에 의한 편협한 가설에 의해 출발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검증된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설에 대한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베타 테스트를 실행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학실험과 같다. 우리가 사람들의 혈액형을 판별하는 실험을 한다고 해보자.
실험대상의 혈액을 추출해 응집반응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혈액형인지 판단할 수 있다.
혈액형은 rh혈액형을 제외하고는 4가지 경우의 수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A형, B형, O형, AB형 중 어떤 혈액형인지를 가정하고 각 경우에 따른 응집반응으로 실험체의 혈액형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험대상의 혈액형을 모르기 때문에 A형일 것이다, 어떤 혈액형일 것이다라고 가정하고 실험을 진행하고 그에 따른 반응결과를 통해 경우의 수를 하나씩 지워나가고 결국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 스타트업은 경우의 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예상하는 가설들을 놓고, 추측하고 시장에 내던짐으로써 시장에서 내놓는 반응을 살피고 그에 맞춰서 수정하고, 그 수정된 결과물을 바탕으로 다시 시장의 반응을 통해 검증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었을 때 비로소 PMF라고 하는 시장이, 소비자가 원하는 니즈를, 핏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켓으로 갔다.
디데이 날인 23일에도 할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밤새 스티커 잔여작업과 갤러리 데코레이션작업을 하여 겨우 완성하였다. 거듭 수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완성해야 할 마지노선이라 강행하였다. 판매장소에 가서 바로 장사에 돌입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절약을 하기 위해서 박스에 부착된 사진을 캐노피에 최대한 걸어두고 상품들을 구분 지어 분리하여 빠르게 진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만큼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 보니 밤을 새도 잠이 오기는커녕 시간이 다가올수록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으며, 다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중력이 폭발해서 ‘어떻게든 끝내야겠다’, ‘가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들로만 가득 찼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짐들을 정리했다. 전장에 나간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었다. 패기에 가득 찼고, 가슴이 뜨거웠고, 얼굴을 치켜들었다. 당당해져야 했다. 캐노피와 다른 짐들을 이것저것 챙겨서 그렇게 자취방을 나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캐노피가 커서 일반 택시들이 승차거부를 하는 일이 많았다. 순탄하면 그게 콘돔프로젝트겠는가. 그래서 급하게 타다를 불렀고, 기다리는 내내 사람들의 여러 시선을 걷어내면서 침묵을 지켰다. 친구와 서로 크게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여간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타다를 타고 신촌으로 이동을 했다. 확실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벤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차가 막힐수록 점점 체감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정한 스팟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큰 길가에서 내려 짐을 이고 우리가 정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우리가 후보지로 정한 장소 몇 군데가 전부 다른 부스들로 가득 찼다. 적십자사 혈액도네이션부스센터, 행사부스 같은 것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리가 생각한 플랜 A, B가 모두 막혀 버렸다. 할 말을 잃었다. 길거리장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장소 전세를 낸 것도 아니라서 주장할 권리도, 할 말도 없었지만 너무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비짚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밀려 밀려 플랜 C인 변두리 구석에 주저앉게 되었다. 어찌할 도리를 몰랐다. 메인거리에서 벗어나 있는 공간이었고, 유동인구도 워낙 적었다. 특히, 메인거리에는 거리행사부스와 더불어 작은 공연 스테이지가 마련이 되어있었는데 우리 위치가 스테이지 바로 뒤편이라 사람들이 쳐다도 보지 않는 최악의 위치였다. 그저 메인거리를 가기 위해 빠르게 지나가는 곳에 불과했다. 그 자리에서라도 시작해보고자 주섬주섬 준비를 했지만 사람들은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행사거리로 가거나 제 갈 길을 가기 바빴다. 케토피를 펴거나 마스크를 쓸 엄두가 안 날 정도로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저무는 해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제대로 입을 떼지 못했고 내 발은 바닥에 떨어질 생각을 못했다.
변두리 구석 다른 공간에는 우리와 같이 장사를 하는 팀이 있었다. 조그만 탈의실 같은 부스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360도 사진을 촬영해주고 돈을 받는 장사였다.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가서 말이라도 붙였을 테지만 그분들 상황이 내 상황인지라 에너지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지키다 쫓겨나다시피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