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국제 도핑검사관 활약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책임감을 강조하셨다. 네가 장남이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하셨다.
동생들과 불과 두 살 터울로 별반 나이 차이가 없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당시 나는 아버지께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꺼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항상 선임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려고 했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내 작은 마음 그릇이 차고 넘쳐 슬퍼진 적도 있었다.
소방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책임감은 소방관이라는 임무와 맞물려 더 가속화되고 강화되었다.
나는 그것을 '가성비 높은 인간'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고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생각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만족감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선임이라는 자리는 대접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더 많이 배려해야 하는 자리다. 더욱이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때에는 가급적 누군가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고민이 깊어질 때도 있다.
만약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 자체가 선임이라는 운명에 결코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다. 그저 생긴 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어제는 바쁜 와중에 졸립다며 커피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미스터 이, 나 하이랜드(Highland) 브랜드의 아이스 모카 마시고 싶어요. 휘핑크림 빼고요. 이 친구는 핫 코코아로 해 주고, 저 친구는 아메리카노로 해 주면 좋겠어요. 시럽 넣지 말고요."
이 황량한 육상 경기장에서, 그것도 한국처럼 사방이 커피숍도 아닌 베트남에서…
당황스럽지만 일단 본부에 커피를 요청해 보았다. 물론 그들이 요구했던 매우 디테일한 커피는 오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맥심 커피와 매우 흡사한 커피가 한 박스 도착했을 때 비로소 안도의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래도 나는 선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