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안전할 거라는 착각

[2023 안전 책임사회]

by 이건

"아, 밀지 마세요..."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의 깊은 밤 속으로 158명의 소중한 생명이 잠들었다.


언론과 정치권은 서로 앞다퉈 "재난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며 지난날의 참사 때와 똑같은 멘트를 쏟아내기 바쁘고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른 채 대한민국 이곳저곳에 상처를 내고 있다.


또다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밝혀내지 않은 채 만만한 사람 몇 명을 골라 벌주는 것으로 이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것은 아닐까?


안전하다는 국가의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에게 밀리지 않고, 또 어쩔 수 없이 밀지 않아도 될 환경은 사전에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거라는 이미 예견된 축제조차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역량이라면 과연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이름만 들으면 그럴싸한 기관들이 많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시청 안전총괄과, 용산구청 안전재난과 등... 재난이 발생하면 마치 영화 속 히어로처럼 등장해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구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고 적혀있지만 과연 정부가 그런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 움직이면 위험해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 배 안에서 방송된 이 말을 우리의 아이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정말로 움직이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희망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말이었다. 배를 책임져야 하는 선장은 아이들의 믿음을 저버린 채 속옷 차림으로 배를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고 안전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우왕좌왕하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21세기 대한민국.

블랙핑크와 BTS의 K-Pop이 전 세계를 춤추게 하고 또 오징어 게임이나 미나리와 같은 K-드라마와 영화에 빠진 사람들은 한국을 배우기에 바쁘다.


1950년 한국전쟁을 치르고 불과 70년도 되지 않아 선진국으로 우뚝 섰으며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유엔(UN)에 11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지급하는 나라이지만 유독 대형 참사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K-안전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늘 반복하고 있는 변명처럼 전문성의 부재일까? 아니면 관련 부서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결국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책임 있는 실천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안전할 권리를 충분히 주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안전할 권리도 철저하게 지켜주지 못했다.


안전 책임사회.

내가 안전할 권리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의무는 말이 아닌 책임 있는 행동을 필요로 한다. 무엇이 위험한지 함께 학습해야 하고 또 우리 주변의 위험요소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동시에 제거하려는 정책적 실천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2023년 우리는 또다시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현재에 실천하고, 안전한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한미공군오산기지소방서 #이건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28년차소방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