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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27. 2020

Open Door Policy

열려있다고 다 열린 문은 아니다. 

주한미군에 입사해서 놀란 점이 하나 있다면 미군 지휘관들은 소통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 문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며 종종 'Open Door Policy'를 강조하곤 한다.

 

열려있다고 다 열린 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문이 정말 열린 문인 줄로만 알았던 순진 아마추어가 일이 틀어졌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긴급한 사항, 개인 신상에 관한 일, 조직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제안 등 지휘관의 관심과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경우에는 어쩌면 그 열린 문을 통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문을 통과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문 말고 다른 문은 없는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 결국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지휘관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냉정하게 말하면 자기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다.


사실 직장 안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소통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나만 알지 못해서 오해했던 일이라든지, 조직의 방향과는 반대로 가서 길을 잃었던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해도 좋다. 하지만 말한 후에 닥칠 일도 생각해 보자.


"It is a free country."


다양한 의견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표현되는 요즈음.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말을 한 후에 닥칠 후폭풍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주한미군의 한국인 커뮤니티는 미군에 대해 절대적인 의존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동료나 선배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제도 오로지 미군에게만 묻고 그 답변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제법 존재한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한국인의 경력, 하는 일, 그리고 전문성을 간과한 채 오직 영어만이 신뢰의 척도가 된다면 그것은 뿌리 깊은 '사대주의'의 발현일 뿐이다.   


내 일로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

주한미군이란 직장은 한국인들이 벌이는 영어 콘테스트의 장이 아니다. 각자가 주어진 업무에 따라서 기대치만큼 혹은 그 이상의 퍼포먼스만 내면 된다. 혹자는 주한미군이 '사장님이 없는 조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평가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주한미군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느낀 점 하나는 동료나 선. 후배 한국인들의 평가가 제일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그 평가는 곧 미군들의 평가로 직결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를 근무하는 미군들은 오히려 한국인 직원들에게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1년을 근무하는 미군의 경우 공휴일, 휴가, 훈련기간을 모두 제하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4~5개월. 냉정히 말하자면 그들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Part Timer'일 뿐이다.  


그런 미군들에게만 잘 보이면 자신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져 들의 주위를 맴돌다가 결국엔 '조직의 쓴 맛'을 본 사람들도 많다.   


결국 영어가 아니라 내가 일의 양과 질로써만 평가받아야 한다. 가장 기본은 한국인들로부터의 인정을 받는 것이 먼저다. '지휘계통 (Chain of Command)'이라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내 주변에서부터 소통의 영역을 확장해 가다 보면 정말 지휘관 사무실의 열린 문을 언제 들어가야 할지 혜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큰 그림을 가진 멘토가 필요하다.

조직이 지향하고 있는 중장기 목표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는 마치 수험생이 시험문제를 미리 아는 것과도 같다. 모든 조직이 비전과 목표를 제공하고 있고, 이것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며 예측 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조직과는 정반대로 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궁금하다. 그런 뚝심의 근원은 무엇인지...

 

내 주변에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는 멘토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일에 충실하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고민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은인을 만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멘토다. 그 만남의 순간을 위해 눈을 크게 뜨고, 귀도 더 넓게 열고, 이 사람이다 싶으면 다가가 소통하려는 의지와 배짱이 필요하다. 비단 정치인은 아니더라도 유연한 허리와 무릎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환하게 열려 있는 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절차를 건너뛰고 제일 높은 사람을 만나서 단판을 짓는 꿈을 꾸는 일도 기분 좋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 내 일에 대해서 인정받는 일, 그리올바른 멘토를 찾는 일이 선행되면 좋겠다. 그런 노력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어쩌면 그때가 바로 그 열린 문을 통과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간 그 문, 나올 때는 발가벚은 민망한 모습으로 동료들을 마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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