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군인들이 전투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자며 자신들이 건넌 다리를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불리한 상황에서 후퇴하지 못한 그들은 모두 전사하고 만다.
그래서 생긴 미국 속담이 바로 "Never burn a bridge. You'll never know when you'll need to cross it again."이다. "절대 다리를 불태우지 마라. 혹시 그 다리를 다시 건널지도 모르니..." 다시는 다리를 건너지 않을 것처럼 불태우지 말고 여지를 두라는 말일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갈등을 끝장을 보자는 '벼랑 끝 전술'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이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맨 처음 미군과 함께 근무했을 때에는 그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했다. 모든 현상을 내 중심으로만 해석하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많았고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벌로 그에 상응하는 스트레스도 받았다.
주한 미 공군에서 처음 만난 동료들, 지금은 모두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되었다.
미군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배운 것은 바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영국 태생의 미군, 독일계 미군, 아시아계 미군, 흑인, 백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우린 서로 다르다는 것, 그래서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설퍼서 문제가 생기면 강하게 나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목소리도 올라가고 표정은 굳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내 주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아 올리고 그 안에 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들어도 좋다. 뒤처리만 잘할 수 있다면...
20대 소방공무원 시절, 혈기가 왕성했던 나는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들이댔었다. 한 번은 소방서장님께 일대일 면담을 신청해서 내가 원하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들이대면서 하나씩 내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나는 그게 맞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일종의 승리감에 도취되기도 했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선배가 조용히 조언을 해 주셨다. "기백은 좋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끝났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가서 정중히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그때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그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서투른 소통의 방식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결국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절대 다리를 불태워서는 안 된다. 다시 건널지도 모를 그 다리, 모두를 위해 남겨두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비록 보잘것없이 좁고 낡은 다리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