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군들과 회식을 했을 때의 어색함을아직도 기억한다. 회식을 하다 보면 결코 술이 빠질 수가 없는데 미국은 한국처럼 술을 따라주고 받는 나눔의 문화가 아니다 보니 모두를 위해 주문한 큰 맥주병 하나를 자기 입으로 홀짝홀짝 마시는 친구에서부터 상대방의 소주잔이 비어 있어도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한 번은 나이어린 친구가 아버지뻘 되는 분이 따라주는 술을 한 손으로 받는 것을 보며 술 예절에 대해서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술을 따를 때에는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연장자일 경우 왼손을 공손하게 오른손에 받쳐야한다든지, 수시로 상대방의 술잔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 자세를 약간 옆으로 틀어 조심스럽게 술을 마셔야 하는지도 말해 주었다. 이런 교육이 효과를 보면서 어느 날 장난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소주 자격증을 만들어야겠다.
2007년 제1호 소주 자격증을 발부하다.
소방대원들은 대체로 목적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재난이 시작되면 반드시 끝을 봐야 하는 것이 소방대원들의 임무이기 때문에 목표가 주어지면 저돌적으로 돌진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처음 장난으로 소주 자격증을 만들었을 때는 한 번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 자격증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에 온 미군 소방대원들마다 자격증을 받고 싶다며 어떻게 하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문의해 오기 시작했다.
서둘러 시험 전형을 만들고4단계로 차별화된자격증을 만들었다. 소주를 물처럼 마시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면 '소주 현장지휘관 레벨 (SOJU Incident Commander Level)'이라는 최고 등급을 부여하고, 그 아래로 '소주 테크니션 레벨 (SOJU Technician Level)'과 '소주 운영단계 레벨 (SOJU Operation Level)', 그리고 소주를 마시고 흔들거리는 초짜들을 위한 '소주 인식단계 레벨 (SOJU Awareness Level)'도 부여해 주었다.
유일한 외부인사 크리스틴. 그녀는 회계감사관으로 유난히 최고등급에 집착을 보였다. 삼수만에 합격.
시스템이 점점 업그레이드 되어 소주 자격증과 함께 부상으로 포켓용 소주가 지급되었다.
그렇게 소주 자격증 수십여 개가 발급되고 부상으로 포켓용 소주도 지급되면서 나름의 견고한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어쩌면 소주 자격증은 그냥 종이 한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종이에는 우리가 함께 한 시간,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한국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 있다.
비록 지금은 술자리를 많이 자제하고 있는 까닭에 몇 해째 자격증 발급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여전히 그때가 그립다. 그게 시간인지, 우정인지, 아니면 소주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