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 Mar 15. 2020

주한미군 아빠 찬스

아빠는 이것밖에 줄 것이 없다.  

언론에 보면 소위 잘 나가는 엄마, 아빠 찬스를 이용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이 많다. 고등학교 학생이 논문의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남들은 빌리기 어려운 대학교 실험실에 수시로 드나들고, 과도한 스펙을 만들어 여러 가지 특혜도 누렸다는 내용이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었던 젊은이들에게는 심한 좌절감과 허탈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미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부모와 함께 '원 플러스 원'으로 경쟁에 참여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극대화될 것이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주한미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성과들을 거두었다. 사실 어떤 성과들은 너무 값진 나머지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이를테면 내가 일하고 있는 자리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고,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인맥은 모두 딸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물며 소시민인 내가 이 정도인데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고 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예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해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그 덕분에 다양한 흔적들도 쌓여간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스무 살의 나이로 다시 돌려보내 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받은 AD 카드. 내 지나 온 시간의 기록들이다.  


하나의 배지를 얻기 위해서 적게는 2주, 길게는 몇 년이 걸린 것도 있다.


슬럼프가 왔을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는 내 소중한 보물들.   


가장 기억에 남는 5킬로미터 달리기 메달 (사진 아래). 남자부 4등이었는데 여자선수가 한 명도 출전하지 않아 여자부 금메달을 대신 상으로 받았다.


물론 앞으로도 시간과 체력이 허락된다면 꾸준히 활동을 해 보려고 한다. 따로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이 기록들 하나하나가 모여 내 인생 일기가 될 테니까...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분명 '꼰대'라고 할 테니 그냥 몸으로 뛰며 새긴 기록의 양으로 승부하려고 한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이런 자질구레한 유물보다는 현찰이나 부동산이 훨씬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내 기록을 보며 마치 아빠는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사람이었구나라고 생각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다.   


주한미군에 근무한다고 하면 늘 듣는 말이 있다. "와, 아이들 영어 하나는 문제없겠네요."라거나 "부대 안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다닐 수 있나요?" 혹은 "부대 안에서 영어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어서 좋겠네요." 등등... 


미군기지라는 것을 최대한 이용한 아빠 찬스가 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들을 해 온다. 하지만 모두 내가 해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줄 수 있는 거라곤 이것밖에 없다. 나머지는 너희가 살아가면서 채우렴.  

이전 16화 우리 소방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