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한미군에 입사했을 때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 있다. 첫째는 부대 안에서 절대로속도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정지신호에서는 차량 네 바퀴가 반드시 멈춰 서야 비로소 정지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부대 내 제한속도는 30KM로이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다. 특히 학교 주변에는 25KM로 지정되어 있다. 과속을 하면 어김없이 헌병대 차량이 나타나 티켓을 발부하는데, 3회 위반을 할 경우 부대 내에서 차량 운전을 하지 못하는 페널티가 부과된다.여의도보다 훨씬 넓은 면적을 걸어 다니면서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원래 속도 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부대 내에서 운전하는 것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하는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군가 횡단보도 근처에 서 있거나 혹은 건너려고 한다면 차량은 무조건 멈춰 서야 한다는 것이다.맞은편에 있는 버스가 승하차를 위해 잠시 멈춰 서 있을 때에도 버스 뒤에서 갑자기 사람이 뛰어나올 수 있으므로 당연히 정지해야만 한다.
아픈 현실이지만한국사회에서는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 더더욱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라면 차가 멈춰서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가 지나간 후에 건너는 편이 오히려 안전하다.
언젠가 퇴근길 부대 밖.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한 소녀를 보았다. 부대에서 훈련받은 대로 차를 멈추고 지나가라고 수신호를 주었지만 소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차가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웃으며 먼저 지나가라는 수신호를 재차 주고 나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거의 90도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한뒤 횡단보도를 건넌다.
순간 너무 미안했다. 사람이 우선인 길을 사람이 먼저 지나가는데 내가 이렇게 과도할 정도의 인사를 받아야 하는 문제인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에어쇼, 아이가 다쳤다.
오산 에어쇼
지난해 9월 미 공군 오산기지에서 에어쇼가 개최됐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많은 인파 속에서 기분이 너무 좋았던 한 초등학생이 점프를 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지나가면서 보니 그 아이의 팔에서 빨간 피가 흐른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이 부모는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
무전기로 대기 중인 구급대원 몇 명을 호출했다.곧바로 서너 명의 미군들이 달려온다. 다행히 간단한 상처여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른 뒤 밴드를 붙여주자, 아이가 하는 말이 놀랍다. "아저씨, 여기는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순간 멍... "어, 여기는 아이가 항상 먼저란다." 답변을 얼버무리고 괜찮은지 꼬마에게 확인한 뒤 자리를 떠났다.
"사람이 먼저다. 아니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 먼저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필요 없는 날은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