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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Jan 26. 2024

동계올림픽의 꽃

[2024 강원 청소년동계올림픽대회 참가기]

지난 4일 동안은 몹시도 추웠다. 썰매장의 위치가 산 중턱인 데다가 마침 평창에 내려진 한파주의보에 폭설경보까지 겹쳐 영하 17도라는 기록적인 추위는 모두를 잔뜩 움츠린 상태로 얼려버렸다.


게다가 부서별로 혼선이 있었는지 매일 단톡방은 영양가 없는 메시지로 폭발해 버리곤 했다. 주차된 차를 신속하게 빼 달라는 말에도, 전기를 연결하지 않아 화장실 배관이 얼어 터졌다는 날이 잔뜩 선 말이 무서웠는지 누구도 반응이 없다. 그나마 아이폰을 주었으니 찾아가라는 말이나, 운영인력에게 목도리와 양말을 제공할 예정이니 어디 사무실로 오라는 말 정도가 인간미 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4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 마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기관인 '독립검사기구(ITA)' 관계자들이 내가 근무하는 곳을 방문했다. 대회 마지막 날이라서 업무량이 제일 많아 바쁜 날이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을 해 왔으니 정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곳 평창에 와서 매일 만 오천보 가까이 되는 걸음을 걸으며 이곳저곳을 누빈 흔적은 아마도 한동안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쁜 일도 아니다. 기억을 저금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살짝 인출해 쓰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기 때문이다.


4일 근무 후 달콤한 하루의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강릉으로 근무장소를 옮겼다. 동계스포츠의 꽃이라고 불리는 아이스하키 링크는 평창의 경기장과는 대조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하다. 거기에 경기장을 가득 매운 관중의 응원 열기 때문인지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일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첫날 근무는 3대 3 경기로 치러졌는데 어른들의 경기와 같이 선수들의 힘이 넘쳤고 몸싸움도 격렬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과 수비는 관중들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었고 경기장은 응원 함성으로 가득 달아오른다.


경기를 보는 것이 곧 일이 되어버린 특권을 누리며 나는 온 정신을 경기결과에 쏟아부었다. 다행스럽게도 썰매 종목에서 함께 일했던 자원봉사자 8명이 강릉에서도 나와 함께 해 주니 너무나 든든하다. 처음 방문한 경기장인 데다가 각 구역마다 권한이 없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등 동선에 제약이 있다 보니 모두가 살짝 긴장한 모습이다.


"이것이 악연일까? 아니면 행운일까?"


평창에서 만났던 ITA 관계자들이 또다시 내 근무지를 방문한 것이다. 게다가 대회 첫날을 격려한다며 관계 부서 위원장님까지 오셨고, 도핑검사 경험이 전혀 없는 미성년자 선수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는 등 어쩌다 보니 난이도가 높은 하루가 되어 버렸다.


자칫 웃음기 사라진 내 얼굴에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일을 오래 한 것 같지만 여전히 긴장을 하는 것은 동계올림픽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자칫 큰 실수라도 해서 오점을 남긴다면 그 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가시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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