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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Jan 25. 2024

인연이라는 축복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참가기]

미스터 라이크(Mr. RAIK). 그러니까 그를 만난 것은 6년 전 평창에서였다. 독일 사람으로 슬림한 체형의 그는 선한 얼굴과 심성을 가지고 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치열한 공간인 올림픽에서는 선수는 물론이고 모든 운영인력들이 마치 칼날처럼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다. 하지만 라이크는 매번 변함없는 순수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심지어는 바쁜 와중에서도 자원봉사자들에게 전달해 주라며 기념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제 봅슬레이 스켈레톤연맹(IBSF)에서 도핑 관련 기술임원으로 일하는 그는 썰매 종목에서만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옌칭 슬라이딩 센터에서 나는 그를 또 만났다. 당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던 조직위원회에서는 중국 도핑검사관들 중에서 슬라이딩센터의 근무 경험이 전혀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에 도핑검사관 파견을 요청해 왔고, 평창에서 슬라이딩센터 도핑관리실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나는 수월하게 중국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옌칭 슬라이딩센터 도핑관리실에 도착한 첫날, 중국 도핑검사관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나에게 잘 부탁한다며 연신 도움을 요청해 왔다. "Sure. I will do my best." 라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라이크가 도핑관리실을 방문했다. 중국 검사관들은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었던 기술임원인 그 사람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나를 보며 마치 "이젠 안심해도 되겠다."는 모습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의 깜짝 방문 덕분에 나의 존재는 단숨에 상한가를 치며 중국 도핑검사관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별스럽지 않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만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와의 재회가 내 위상과 행복지수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비로소 어쩌면 그를 2024 평창에서 또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 또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다. 대회 둘째 날  IBSF 창립 100주년 기념핀을 손수 챙겨 와서는 우리 도핑관리실 자원봉사자들에게 나눠준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물질의 세례를 받으며 행복해했다. 


대회 마지막 날 경기를 마치고 도핑관리실을 방문한 그에게 나는 지난 5일 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또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그를 만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소주도 한 잔 할 생각이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이번엔 내가 그에게 알려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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