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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07. 2024

휴식 후 복귀

[소방서 다이어리]

Prologue: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가감 없이 적어 보려고 합니다. 부디 이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소통을 통해 내 작은 세상도 더 풍성해 지길 기도해 봅니다.


나는 일 년에 2주씩 휴가를 내곤 한다. 물론 근무를 꽤 오래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직장인들이 이렇게 휴가를 몰아서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지랄 맞은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번은 미군 소방서장과 마찰이 있어서 힘 겨루기를 하느라 3개월 동안 자리를 비운 적도 있었다.


주한미군이라는 조직문화는 자신의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사람에겐 매우 관대한 편이다. 미국의 문화라는 것이 내가 대한민국 공무원이었던 시절의 문화와는 달라서 정책들이 대체로 '징계와 통제'가 아닌 '자율과 동기부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평상시 내 업무 처리 방식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업무를 하는 스타일이기도 해서 이런 내 스타일에 대한 조직차원에서의 인정이 이렇게 정기적으로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측면도 있다.


매번 서명이 된 휴가증을 받아 들 때면 마치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의 마음처럼 설렘이 찾아온다. 하지만 대다수의 휴가는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혹은 집에서 푹 쉬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내 휴가는 자원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나 혹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에 도핑검사관(파트타임)으로 참가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렇게 해마다 '나를 찾는 여행'을 쉬지 않고 하다 보면 적어도 고인 물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고, 그래서 휴가가 더 설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9년 동안 소방관으로 지내면서 난 ‘지시’라는 단어에 무척 익숙해져 있다. 매번 지시를 받았고, 또 지시를 하면서 “왜?”라는 질문은 거의 배제한 채 그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자 노력했고, 또 후배들에게도 임무를 완수하라고 질책하기도 했었다. 사실 유니폼을 입고 생활하는 조직에서는 “왜?”라는 질문은 금기시되는 단어다. 그동안 이런 룰을 깨뜨려 망가진 경우를 무수히 많이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2주간의 휴가는 “왜”라는 질문이 언제든지 허용되고, 또 서툴지만 스스로에게 답을 하면서 내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올 해도 어김없이 휴가를 갈 것이다. 아마도 이번엔 한 달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그래서 연초부터 부지런히 휴가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런 휴식 후 (사실 사무실보다 더 많이 일을 할 때가 많지만…) 복귀는 왜 내가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소중한 쉼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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