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 Jul 08. 2024

그래도 파리에 갈 거야.

[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처음엔 친환경 올림픽을 구현하겠다면서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미국, 독일, 영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무려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자국 선수들의 건강과 쾌적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자신들이 직접 비용을 내서라도 휴대용 에어컨을 가져가겠다고 하자 결국 파리가 한발 물러나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다.


한편 센강에서 펼쳐질 예정인 오픈워터 종목과 철인 3종 경기 수영 또한 수질 문제로 말이 많다. 거기에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다리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리의 거주자들의 텐트를 시 당국이 강제로 철거하기도 했다. 그러자 화가 난 일부 사람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시책에 반발해 센강에 오물을 배설하자는 캠페인까지 진행하고 있을 정도다.


다른 분야에서의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 마침내 도핑검사관들의 근무지와 근무 일정이 발표되었다. 문제는 파리 조직위에서 보내오는 거의 대다수의 파일들은 마치 은행처럼 2차례 이상의 인증을 받아야만 접속할 수가 있어서 운이 좋은 사람은 파일이 열려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다른 도핑검사관들은 도무지 파일이 열리지 않아 내용을 볼 수 없다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접속이 안 되는 문제는 나에게도 예외가 없었는데, 마침 2018년 평창올림픽에 참가해 인연을 맺었던 한 외국 도핑검사관의 도움으로 내 근무지와 일정을 간략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120여 명이 모여있는 국제 도핑검사관 단톡방에서는 “2018년 평창올림픽이 좋았었다. 2021년 도쿄올림픽이 좋았었다.”며 옛 기억들을 소환해 보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또 기다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IT 환경에서 안 열리는 파일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렵다.


어찌 됐든 이런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 덕분에 조직위로 문의하는 이메일의 양도 두 배 세배가 늘어나고 있다. 아예 처음부터 다른 올림픽처럼 도핑검사관들에게 보안 서약서를 받고 필요한 파일이나 자료에 접속할 수 있도록 기획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보안 문제로 내가 배정된 근무지를 밝히긴 어렵지만 내가 일할 종목은 제법 익숙한 분야여서 마음이 가볍다. 총 근무일은 12일, 휴일은 6일로 책정되었으며, 근무시간은 하루 기준으로 대략 7시간에서 10시간 정도다. 프랑스 노동법에 따른 조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올림픽에서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을 근무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합리적인 수준이다.


출국은 예정대로 7월 23일로 정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항공권만 도착하면 된다. 혹시라도 궁금해할 독자분들을 위해 도핑검사관에게 제공되는 혜택을 간략하게 적어볼까 한다. 일단 왕복 항공권과 숙소 (2인 1실), 그리고 조식과 하루 근무수당 70유로, 근무일마다 한 끼 식사 제공, 교통카드, SIM 카드, 유니폼 (재킷 1, 티셔츠 2, 모자 1) 등이 제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혜택은 화려하면서도 뜨거운 올림픽 현장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아닐까?


파견을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무 교육도 받아야 하고, 단체방에 접속도 해서 자료도 다운로드 받아야 하고,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사람도 있으니, 저마다 조금씩은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모를 때는 묻고, 또 때로는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라도 파리에 가야만 한다. 4년마다 찾아오는 기회를 짜증과 불평으로 망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4 파리올림픽 출정식에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