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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N Feb 14. 2024

그런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설득해 겨우 엄마와 일본에 갔고

내가 몇 일간 세운 계획 중 엄마는 배 타고 단풍 보는 것을 가장 기대했다.


예보에 없던 비가 심하게 왔고 우린 우산도 챙기지 못해 편의점에 들러 급하게 우비를 샀다.

그리고 선착장에 도착해서야 그날 모든 배가 취소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날 그리고 엄마를 불운했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마음에 걷기라도 하자며 배가 갔을 방향을 짐작해 그 길을 따라 우비를 입고 걸어갔다.

서로가 실망을 감추고 말 없이 걷다보니 그래도 좋은 풍경들이 눈 앞에 있었고 나와 엄마는 조금씩 감탄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기차역이었다.

운 좋게 마지막 남은 표를 간신이 사서 기차를 탔고 나름 멋진 단풍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즐거워하시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바람이 심하게 불어 우산보다는 우비를 입고 다녀 오히려 다행이었지 싶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유튜브로 그날 못 한 배 타고 단풍 보는 여행 브이로그를 봤는데 일본어 투어라서 배를 탔어도 이해하지 못 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도 사실 배가 취소되었을 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여기에 언제 또 올까 싶어 너무 너무 속상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와 함께 말하고 걸으며 보는 풍경이 너무 좋았고 기차도 타고 우비 입고 다니는 여행이 너무 재밌었다고 하셨다. 

오히려 배 투어는 집에 와서 유튜브로 일본어 자막이랑 같이 본 게 더 나은 것 같다며 안 한게 다행이라고...


그래, 그런 날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불운한 그런 날은 또 올거란 걸 안다. 

불운한 날이 꼭 불행한 날이 아니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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