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중인 하루치고는 꽤 많이 걸었다.
오늘은 아기 없이, 오랜만에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았다.
며칠 전, 아기가 두 번째 백신을 맞았다.
이번엔 열이 날 수도 있다는 말에 괜히 긴장이 됐다.
생일이 며칠 차이 나는 사촌 언니의 아기도 같은 백신을 맞고 잠을 잘 못 잤다는 말을 듣고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원래는 울어도 등을 대고 재우는 수면 교육을 하고 있었지만, 이틀간은 안아서 재웠다.
열 몇 시간 동안 인간 침대가 되다 보니 허리에 통증이 왔다.
다행히 주말이었고, 마침 남편도 요즘 허리 때문에 한의원을 다니고 있던 터라 오늘은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나도 다녀오기로 했다.
그 전에, 아기 백신 맞던 날 유모차 끌고 갔던 테라로사에서 진동벨을 반납 못 한 게 생각나 먼저 테라로사에 들르기로 했다.
세종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진동벨을 건네자 알바생이 반가운 얼굴로 “아! 그때 유모차 끌고 오셨던…!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평일엔 아기와 함께 오기 어려워서 늦게 반납드려 죄송하다고 말하고 자리를 나서려 했는데, 막상 카페에 오니 음료 하나 안 마시고 나올 수가 없었다.
핫초코 한 잔 테이크아웃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카페 사람들을 구경하고, 바쁘게 음료를 만드는 알바생들을 보며 오랜만에 여유를 느꼈다.
그리고 음료를 들고 자전거를 탈 순 없으니, 잠시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걷는 동안 자꾸 텅 빈 상가에 눈이 갔다.
날씨도 좋고, 어렵게 얻은 자유 시간이었는데…나는 세종시 상가의 공실률을 걱정하고 있구나.
걷다보니 한의원에 가기엔 날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자전거나 실컷 타보자고 결심!
세종시 자전거길이 이렇게나 잘 되어 있는지는 몰랐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이구나 여기는.
그리고 그 중에서도 비싼 집들은 이유가 있구나. 이렇게 걷고 뛰고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 많다니!
한참을 달리다 금강까지 갔고, 이제는 돌아가야겠다 싶어 집으로 향했다.
오늘 산책이 좋았던 만큼, 남편과 아기와도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년 여성분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늘이 많아서 여기 꽃들은 늦게 피는구나!”
그냥 스쳐 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자꾸 곱씹게 되었다.
얼마 전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기 밥 주는 것도, 재우는 것도, 놀아주는 것도 하나하나 너무 긴장이 돼.”
남편은 놀라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 난 닥치면 그때 가서 생각하니까 훨씬 마음이 편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보다.
남편은 좀 더 느긋했고, 아기도 그 편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아기에게 그늘이 아닐까? 그늘이 너무 많으면, 꽃도 늦게 피는데…
앤 해서웨이가 UN 연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아들을 안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세포 단위부터 바뀌는 기분이었다.”
보편적이면서도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참 공감됐다.
요즘 내 세포들은 전부 아기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복과 부담은 매일 정비례했다.
오늘은, 많이 걷고 많이 달리며 아기로 향해있던 내 몸의 세포 몇 개를 다시 나에게로 돌려놓는 연습을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