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6걸음, 서운했던 날의 기록

by 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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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대판 싸웠다.
서로 사소한 서운함들이 쌓이고 쌓여 터진 거였다.

남편은 금방 풀렸지만, 나는 다음 날까지도 풀리지가 않았다.
슬퍼서 잠도 안 오고, 다음 날도 눈물이 계속 났다.

남편 직장이 왕복 4시간이라 아기를 돌볼 시간 자체가 적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얄밉고 억울했다.

60일까지 새벽 수유를 혼자 도맡았는데 남편이 자기 전에 웹툰 보던 게 자꾸 떠올랐다.
육아를 안 하니 체력이 남아돌아서 그랬던 거였겠지, 하는 생각에 또 괜히 화가 났다.


이런 게 산후우울증인가 싶었다.
아침밥 먹으면서도, 젖병 닦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피곤해서 낮잠이라도 자보려 했는데, 눈물 때문에 그것도 실패.
아기랑 놀면서도 눈물을 꾹꾹 참았다.


하필 오늘은 아기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평소엔 한번데 두시간 넘게 자던 낮잠을 30분도 못 자고 예민하게 굴었다.

아기가 슬퍼서 우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아기의 감정이 전염된 듯 나도 더 슬펐다.

아기를 좀 더 재우려고 아파트 단지를 부지런히 걸었더니 오늘 유난히 많이 걸었다.


사실, 혼자 육아하는 게 남편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남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업무 중에도 전화해서 분유는 어떻게 먹이는 게 좋을지 물어주고, 회사에서 소소하게 받은 선물도 공유하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이 잘 풀리지 않았고 그럴수록 퉁명스럽게 굴었다.


남편은 오늘 무리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일찍 퇴근했다.
원래는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데 오늘은 자전거 타고 날아왔다고 했다.

마침 아기는 분유도 평소보다 적게 먹고 밤잠도 안 자겠다고 울고불고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바로 아기를 토스했고, 신기하게도 남편 손에 안긴 아기는 남은 분유까지 다 먹고 조용히 눈을 깜빡이다가 잠들었다.

남편은 그 뒤로 우리 저녁도 만들고 설거지도 다 했다.

이렇게 육아와 집안일을 쉼 없이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


아기가 남편 손에선 더 잘 자고, 더 잘 먹는 걸 보면서
‘남편이 일찍 오는 날이 많으면 아기가 더 편하겠지’ 라는 생각과
‘왜 나랑 있을 땐 안 그럴까’ 하는 자책이 섞였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마음을 괜히 또 남편 탓으로 돌리고 싶었나보다.


자기 전, 남편에게 모진 말을 했다.
그리고 “산후 우울증 같아”라는 말도 꺼냈다.

그렇게 울다가 진정되서 잠들었다가 깼는데 남편은 아직도 깨어 있었다.
왜 안 자냐고 물었더니 내가 걱정되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제야 남편의 피곤한 얼굴이 보였고 그동안 얼마나 애쓰고 있었는지도 떠올랐다.
그때서야 감정이 풀렸다.

그날 밤, 남편은 말했다.
“빨래만 저녁에 못 돌리니까, 그거 빼고는 청소나 설거지는 퇴근 후 내가 할게.”

내가 괜찮다고 했더니
“나도 내 몫은 하고 싶어.” 라고 말했다.

새벽 수유도 하고, 퇴근하고나서 저녁도 만들고, 말없이 나의 힘듦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남편.

나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우리 아기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


서로 다투고 상처 주고 마음이 멀어지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 다시 서로를 향해,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걷게 되는 것 같다.내 마음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나도, 그만큼 다정한 아내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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