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온라인 상에서 ‘설거지론’ 논쟁을 둘러싼 열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설거지론’에 대해 각계 사람들은 성별과 세대별로 나뉘어 상반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 논란은 2030 남성으로부터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반면 2030 여성들은 ‘설거지론’에 대해 “결혼 못하는 패배자들의 아우성”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주말부터 남성 이용자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된 이른바 ‘설거지론’은 연애 경험이 적거나 없었던 남성이 고소득 직장을 얻어 젊은 시절 문란하게 지낸 여성과 뒤늦게 결혼한다는 것을 뜻한다. ‘설거지론’에 등장하는 남편은 ‘퐁퐁남’으로 불린다. 이는 자신이 돈을 버는 데도 경제권을 가진 아내에게 용돈을 받고, 퇴근 후 설거지로 대표되는 집안일을 도맡는 남성을 일컫는다. 한 누리꾼의 ‘설거지론 알고리즘’에 따르면 ‘20대 초반 연애 경험이 없다’, ‘고소득의 직장이 있다’, ‘아내에게 경제권이 있다’, ‘아내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아껴주지 않는다’ 등에 해당되면 ‘퐁퐁남’에 해당된다. 이런 속어는 빠르게 퍼져 대학생과 직장인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설거지론’ 따위의 세대 담론은 각 시대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이전의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의 담론은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가진 애환과 문제점을 고민하게 했다. 그러나 MZ세대가 논쟁의 중심에 선 작금의 젠더 갈등은 정도가 심한 측면이 있다. 문제를 감추지 않고 개인의 견해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MZ세대의 특성은 일전의 ‘김치녀’ 담론과 ‘페미니스트’ 논란에서 나타난다. 부르는 말만 다를 뿐, 주장하는 측이 반대되는 성별에 정해진 프레임을 씌워 ‘절대 악’으로 취급하고 힐난하기 바빴다.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드러내기보다 혐오로 점철된 분노를 뿜어내는 현상은 담론이 아닌 떼에 가깝다.
사실 ‘설거지론’은 한 마디로 쉽게 정리된다. 나는 남편을, 혹은 부인을 사랑하기에 우리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면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는 사랑이 없다. 서로를 믿지 못한다. ‘설거지론’은 MZ세대가 가진 속마음을 극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간 해소되지 않은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를 건드렸다. 비난의 대상은 남-녀 관계에서 남-남 관계로도 번졌다. 이제 기혼과 미혼, 고소득과 저소득으로 나뉜 남성은 서로를 공격한다. 언론도 편 가르기를 권장한다. 여러 전문가들은 ‘설거지론’을 단순한 여성 혐오로 치부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달 28일 중앙일보에 쓴 칼럼에서 “설거지론은 실패한 남성들의 자조적인 여성 혐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비슷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나는 명백한 페미니스트다”라고 밝히며 여성 우대 정책의 신설을 다짐했고, 야권 대선 후보 홍준표 전 대표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페미니스트 정책은 하지 않겠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다. 이들은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양극단에 서 갈등에 불을 지폈다. 담론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없이 한쪽의 입장만 대변하는 사회의 모습은 ‘설거지론’으로 갈라진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일말의 이해와 공감, 사랑이 없는 ‘설거지론’은 다시금 청년 세대 갈등에 불을 지폈다. 과연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설거지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비정상적인 게임의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