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나는 12시간이라는 오랜 비행시간과 경유로 지쳐있었고 옆자리의 아기는 연신 울어댔고 아이하나는 계속 징징거렸다. 좁은 기내에서 아이들을 달래는 것도 일이겠다 싶어 행여나 눈치를 준다고 생각할까봐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승객들또한 그런 눈치였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살짝 돌리자 눈이 커다란 곱슬머리의 한 아기가 엄마품에 안겨있다. 내가 아기를 보면서 웃고 고개를 몇번 흔들고 젬젬을 해주자 낯선 외국인의 재롱에 눈이 커다래진 아이가 울음을 그치더니, 마침내 방긋 웃어준다.
모든게 평화로워지는 저 맑은 웃음!
아기에게 무장해제당한 나는 아기를 한참 놀아주었다. 그러자 아기의 언니도 슬그머니 옆으로 와서 수줍은 미소를 띈 채 나를 한참 바라 본다. 아기엄마는 인도에서 왔고, 두 자매는 1살, 5살인데 아기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렇게 운다고, 평소에 큰딸은 아기를 질투해 자신의 사랑을 놓고 얼마나 경쟁하는지 모른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두 아이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아이엄마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그런 상황에 옆자리 친구가 유아교육과 출신인걸 티낸다며 웃었다. 이러려고 한건 아니고 오랜만에 본 아이들이 예뻤을 뿐인데. 비록 뛰쳐나온 길이지만 그럼에도 내게 유아교육의 DNA라도 있는걸까? 5살짜리 아이가 경계를 풀고 내게 온 뒤 아기엄마는 아기를 한손에 안은 채 한참 전 나온 기내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아기엄마가 나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데 아이 둘을 혼자 보느라 힘들었겠다고 생각했다. 안쓰러워라.
5살인 아이의 이름을 물었지만 알아들을수 없을만큼 길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렇구나-를 외친 뒤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묻기로 했다. 아이는 수영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고, 수영을 좋아한다는건 아주 멋지다고 이야기했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위바위보 놀이를 아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대신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새로산 파란색 자켓을 가져와 입으려고 시도한다. 팔이 안쪽으로 뒤집혀있다. 5살이니 뒤집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이엄마를 보니 아기가 또 울어 달래느라 큰아이를 볼 정신이 없다. 나는 자켓을 뒤집어주고 슬쩍 잡아주었다. 자켓을 입은 아이는 지퍼를 혼자 올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소리없는 박수를 치며 멋진 파랑색 점퍼네, 그뤠잇!을 해주었다. 아이는 또 큰 눈망울로 온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여유를 되찾은 아이엄마와 한참을 또 조곤조곤수다를 떨었다.
아이들은 참 예쁘다. 매일 볼때는 그 사실조차 까먹을만큼 힘들어서 그만뒀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아이들과 놀아주니 너무 즐거웠다. 한 3일에 한번씩만 아이들과 노는 직업은 없나 하고 생각해보다가 포기한다. 그냥 이렇게 가끔 아이들과 놀고 대화하는걸 즐거운대로 놔둬야지. 유치원교사를 하면서 아주 소중한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바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