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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Oct 09. 2022

보르도 시골의 따끈따끈 베이커리 그리고 말랑말랑 고양이

따끈하고 말랑한 고양이를 안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9월의 보르도는 쌀쌀하다. 가격이 싸고 고양이가 있다는 이유로 예약한 에어비앤비에는 주인과 함께 사는 고양이 미모사가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왼쪽 눈이 없다.미모사야,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겠지만 많이 아팠겠구나. 그래도 미모사는  평온한 세상살이에 아무 경계심이 없는  하다. 미모사는 얼마나  자리에만 앉아있었는지 자기 몸의 크기만큼 동그랗게 눌린 자국이  작은 소파에 누워있다가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한쪽 눈을 꿈뻑 꿈뻑거린다. 살이 말랑말랑한 미모사를 품에 안아보니 가만히 그릉거린다. 쌀쌀한 공기 속에서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고양이를 안고 있자니 더없이 나른하다.

동네산책을 가보았으나 정말이지 할게 아무것도 없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이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진짜 시골. 끝없는 풀밭과 이따금씩 있는 주택들, 오후2시면 영업을 종료해버리는 식당들.

-내일은 와이너리 투어를 가야하니 오늘은 쉬어야되는건 맞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우리는 걷다 걷다 드디어 작은 빵집하나를 발견했다. 반갑다 빵집아. 파리에서는 발에 채이도록 많더니만 보르도 시골에선 빵집조차 귀하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파스타와 크림브륄레, 크로와상과 마카롱과 따끈한 커피를 시킨 우리는 길가 테라스에 앉는다. 지나다니는 행인조차 별로 없고 차만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진짜 사람없네. 나는 따뜻한 커피를 홀짝거린다. 한국에서는 얼어죽어도 아이스커피라며 커피만 마셨는데 프랑스엔 아이스커피라는 개념이 없다. 억지로 따뜻한 커피를 마시다보니 따뜻한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몸이 순간 뜨끈해지는 느낌이 참 좋단걸 알게되었다.

갓나온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물었다.

-와. 미쳤다.

친구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아주 맛있다는 뜻. 바삭한 껍질을 씹으면 부드럽고 쫄깃한 속이 씹힌다. 버터향이 올라오는데 이건 마치 한우를 씹는 기분. 프랑스에 와서 먹은 크로와상 중에 가장 맛있는 크로와상을 보르도 시골의 작은 빵집에서 먹어볼줄이야. 뒤이어 주인이 프랑스식 크림브륄레라고 소개해준 크림브륄레도 한입먹어본다. 타르트지가 있는 크림브륄레는 난생 처음인데 만화<따끈따끈베이커리>의 오바스러운 반응이 절로 나온다.

-태어나서 먹은 크림브륄레중에 제일 맛있어.

친구는 프랑스에 와서 그 말을 몇번이나 하는 거냐며 웃는다. 맞다. 태어나서 먹은 가장 맛있는 디저트들은 다 프랑스에 와서 먹어본것 같다.

넓은 마당에서 맨발로 걸어보았다. 공기는 선선하고 잔디밭은 차가웠지만 산뜻한 기분. 이런 정원이 있는 시골집에 살고싶다고 생각해본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정원에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햇빛이 잘드는 거실에서 글도 쓰며 살고싶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모습을 한 장면 그려 볼 수 있어 좋다. 역시나 또 한번 깨닫는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한다는건 결국 나에 대해, 나의 삶에 대해 배우는 여행이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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