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출판사!
그만두고 두달쯤 지났을 무렵, 전자책을 출간했다. 퇴사를 했지만 4년간의 전공지식과 임용시험을 합격했던 경력, 교사경력까지 총 8년을 이대로 물거품처럼 흘려보내긴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하루에 열시간씩 노트북을 붙잡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눈이 시큰거릴만큼 글을 썼다. 교육청,교육과정평가원,교육부,아이누리홈페이지 등을 들락거리며 정보수집을 하고, 내가 공부했던 몇백장의 자료들을 추려 정리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렇게 한달 후 A4용지 약 130페이지 분량의 원고가 나왔다.
제작부터 홍보까지 전부 내 이름을 달고 내보내는 프로젝트를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판다는 생각을 하니 글 한자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난생 처음 책이란걸 만들다보니, 수정과 편집은 글쓰기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라 내가 다시는 책쓰나봐라, 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긴 했어도 이게 과연의미가 있을까 하며 저작권등록과 크몽페이지 등록까지도 긴가민가했다.
책을 등록하고 sns에 홍보한 첫날부터, 한권이나 팔릴까했던 온라인 책장사는 의외로 순항하기 시작했다. 낸지 열흘만에 50권을 넘게 팔았을 무렵, 전자책을 종이책으로도 내달라는 메세지 몇개를 받았다.
-내 책을 종이책으로? 그래, 안될게 뭐람!
어차피 나는 평생 글을 쓸 거니까, 임용고시에 관한 이번 책 이후에도 내 책을 내가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끊어놓은 비행기티켓과 마음먹은 세계일주도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을 좀 하던 나는 둘다 해보기로 했다.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살려고 그만뒀으니까!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은 전자책 출판사로 기존의 책을 판매하고 홍보하며 기반을 다져보기로 했다. 전자책 출판사의 이점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세계 어느 나라에 있든 운영이 된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수익조건달성이 머지않은 유튜브를 하기 위해서도 사업자등록은 필요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만 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에 한두가지에 집중해야 할텐데, 하나라도 포기하기엔 내겐 모두 너무 재밌는 일들이었다.
결국 나는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이라도 전자책 출판도, 유튜브도, 인스타툰도 글쓰기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러니까 이 모든건 그 무슨 대단한 결심도, 야망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저 재밌고 즐거운 일을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욕심의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은 불안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출판사를 등록하러 가면서 출판사는 사양산업이라 출판업계 모두가 말리는게 출판사 창업이라던데, 나는 그저 작가일을 평생 하는게 꿈일 뿐인데 책을 만들려고까지 한다니 일을 너무 크게 벌리는 걸까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구청까지 가서 주춤거리며 걱정하는 내게 아빠는 말씀하셨다.
-괜찮아, 그냥 한번 해봐. 이미 넌 책도 세권이나 썼고 출판사하겠다고 한 과정도 즐거웠잖아. 스티브잡스가 과정이 곧 보상이라고 그랬대. 살다보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거야. 성공하면 좋고 안되면 또 다른거 해.
그렇게 꿀꿀출판사는 탄생했다.
신고증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건네주던 구청 직원이
‘아, 꿀벌출판사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신고증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눈물이 날만큼 웃었다. 꿀벌이나 꿀꿀이나 뭐 한글자라도 기억해주니 좋네. 과연 꿀꿀출판사는 누군가에게 기억될 출판사가 될까?
내가 만들었지만 나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세권의 전자책을 마지막으로 한때 존재했던 수많은 출판사중 하나가 될지, 아니면 언젠간 꿀꿀출판의 이름을 단 실물의 책이 나올지.
다만 이 한장의 출판사신고증은 의미없는 쓰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끊임없이 의심했던 내게 작은 믿음을 주었다. 이 믿음이 있는 이상 나는 앞으로도 계속 힘차게 걸어나갈수 있을 것 같다. 그 믿음이 무엇이냐면, 세상에 사람의 공력이 들어간 일은 어쨌거나 아주 의미없지는 않다는 것. 한명이라도 내 책을 봐줄까 의심하며 책을 쓰기 위해 머리를 싸매던 시간들이 출판사창업까지 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믿을 수 있다. 열심히 하다보면 그 시간들은 언젠간, 비록 나만 알만큼 아주 미약한 방식으로라도.. 틀림없이 빛이 날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