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이 네 콩팥 떼어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살다보니 이런 일이, 여행자의 맹장수술-2

by 박꿀꿀

드디어 수술하는날 아침이 밝아왔다.

잠에서 덜깨 여기가 발리인지 한국인지 비몽사몽한 나는 환자복을 입은채 침대에 누워 왔다갔다 하는 간호사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샌가 간호사님이 링거팩을 들고 들어와 곧 ‘sleepy’해질거라며 내 링거줄에 약을 매달았다. 혹시 마취가 덜되면 어떡하지? 분명 긴장하며 약봉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

어느샌가 몽롱한 의식사이로 ’It’s finish’소리가 들려왔다.

수술이 벌써 끝났다고? 그저 눈을 잠시 감았다 뜬것 같은데 몇시간이 지나있는 전신마취의 힘에 감탄하기도 잠시, 아랫배에서는 칼로 베인듯한 강한 통증이 서서히 느껴져왔다. 나는 칼로 배를 갈라 여는 개복수술을 받았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니 의사선생님이 요즘 맹장수술은 거의 다 구멍을 내는 복강경수술로 하는데 신기하다며 의아해하셨다. 아랫배의 칼자국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전 몸에 칼을 댈 운명이었나봐요.

어찌되었든 그렇게 수술은 잘 끝났고, 내가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에 당장이라도 발리에 날아오겠다는 엄마를 말리느라 언니가 고생했다고 했다. 엄마가 비행기표를 사겠다며 했다는 말은 곧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발리에서 보호자없이 수술했다가
그 사람들이 너 콩팥 떼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을 듣고 나는 수술한 배를 부여잡고 눈물나게 웃었다. 수술한곳이 아파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음소거를 한 것마냥 웃어대며 나는 말했다.

-엄마, 넷플릭스 좀 그만 봐!


수술을 한 후 의사는 특이하게도 내 뱃속에서 떼어낸 장기(충수)를 통에 넣어 손수 들고와 보여주며 염증이 심했다는걸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그걸 잠들어있던 나는 보지 못했고, 대신 간호해주겠다며 찾아왔던 내 친구가 울며 겨자먹기로 보고 들어야 했다. 친구는 그 떼어낸 장기를 떠올리며 한마디 감상평을 나지막히 들려주었다.

Eww, That was ..disgusting(역겨웠어).

그러면서도 친구는 분명 내가 그걸 보고싶어할거라고 생각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그 덕에 평생 다시는 볼일없을 내 장기를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호기심에 그걸 본 나의 지인들은 마치 충수가 명란젓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했다. (아래는 모자이크된 사진.)

안녕, 충수야.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나는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을만큼 회복이 되었다. 물론 몸을 일으키는덴 수직으로 꺾여 몸을 일으켜주는 전동침대가 필요했고, 몸을 일으켜 부축해줄 간호사가 필요했지만. 침대에서 화장실은 겨우 세걸음 거리였는데 그 세걸음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한번은 그 세걸음 거리를 바들바들대며 배를 부여잡고 링거팩을 들고 걷다가 순간 스스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화장실에서 침대까지 눈물겨운 세걸음!

고작 세걸음 거리를 이렇게 느리게 걸어야 한다니. 한발자국 떼는게 이렇게 어렵다니. 걸어서 지구한바퀴를 걷겠다는 결심을 한게 고작 세달 전인데 … 지구한바퀴는 커녕 화장실까지 세 걸음도 힘겹다니! 나는 겨우 침대에 도착해 다시 힘겹게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돈이 아니라 건강이.. 건강이 전부네. 진짜 전부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나는 다행히도 퇴원해도 될만큼 회복이 되었다. 이젠 의료진과 가족들에게 ‘방귀는 꼈냐’ ‘푸푸(poop)는 했냐’ 하는 안부인사도 듣지 않아도 되고, 맛없던 환자식도 더이상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두손을 번쩍 들고 춤을 췄다.

흰 쌀죽과 간장이 그리웠던 발리 병원의 환자식.

고작 5일 있었는데 병원이 어찌나 감옥처럼 느껴지던지. 퇴원하면서 나는 영수증을 봉투 한가득 받아들었다. 호텔에 돌아와 봉투에서 영수증을 꺼내자 과장 조금 보태 내 키만큼 긴 영수증이 둘둘 빠져나왔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한 총 금액은,,약 10,470,000원.

단 4일만에 병원에서 천만원을 쓸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 돈이 있어서 살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고, 여행자의 생사를 돈이 갈라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몸으로 여행을 계속하기엔 무리일듯 해 한국에서 몇주만 쉬어가기로 결정하고 귀국행 비행기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난관은 또 있었다. 출국심사때 만료된 내 비자가 역시나 문제가 된 것이다.

비자가 만료된지 8일이 지났다는 심사관에게 상황이 응급해 수술을 해야했다고 나는 설명했다. 응급환자였으니 비자문제를 이해해달라는 말까지 쓰인 의사소견서와 한 뭉치의 병원서류를 들이밀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는 심사관들에게 눈물까지 그렁그렁 만들어가며 애원해봤지만 심사관들은 어쩔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중엔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이런 비자문제도 이해를 안해주냐며 혼자 씩씩댔지만 그또한 소용없었다. 그렇게 나는 800만 루피아, 총 약 70만원정도의 쌩돈을 벌금으로 내야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점은 한국에 돌아와 검사를 해보니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콩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 기쁜 일은 보험을 청구한지 5일만에 병원비를 그대로 돌려받았다는 것! 발빠른 한국 보험회사의 일처리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하마터면 세계여행이 영원히 스탑될뻔했는데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적어도 맹장염걸릴일은 없으니 3주만 쉬고 3월부턴 다시 마음놓고 여행해야지!

나의 다짐을 들은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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