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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Oct 24. 2016

이런 리뷰도 하나쯤은 필요해 비교를 못해봐서 다 샀거든

지지직 / 집에서 굴러다니는 펜(스테들러, 코픽, 지그, 파버카스텔)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이것은 집에서 굴러다니는 펜 리뷰이다. 원래 수능 공부든 업무든 집 청소든 하다 보면 딴짓이 하고 싶게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의 DNA에 내재된 본능이다. 본능은 거스를 수 없다. 그러므로 한다. 리뷰.

오늘의 리뷰 대상.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코픽 멀티 라이너 SP, 지그 캘리그래피 트윈팁, 파버카스텔 PITT 아티스트 펜, 파버카스텔 에코 피그먼트 펜. 기준은 없다. 마치 정부 정책처럼. 단지 서랍 정리를 하는데 들어 있었다. 평생 다 쓰지도 못할 텐데 모으기는 엄청나게 모아댄다. 그래놓고 정작 필요할 때 없어서 다시 산다. 예전에 조석 작가의 웹툰 '마음의 소리'를 보다가 컴퓨터가 고장 나서 손으로 그린 편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펜 리뷰니까 펜으로 직접 써보기로 했다. 일종의 오마쥬. 그리고 몇 줄 쓰지 않아 깨달았다.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먼저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0.8과 0.5는 육안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팁이 단단한 것이 특징. 0.4부터 아 조금 얇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0.1을 쓰다 보면 과거 파이롯트 하이테크 펜 쓰던 시절의 향수가 자극되며 불안 불안하고 금방이라도 심이 들어가서 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그림 그리려고 산 거였기에 글씨 쓸 거였으면 0.1은 안 샀을 것이다. 가격은 2400원 선.


이것은 코픽 멀티 라이너 SP 0.5다. 그림 좀 그린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펜. 선 따기에 좋은 펜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자루만 있는 이유는 비싸서. 알루미늄 보디가 있어 보인다. 겨울에 쥐고 있으면 차갑다. 가격도 있어 보인다. 한 자루에 6800원 선. 물론 더 싸게 살 수 있지만 오늘 리뷰하는 펜들 중에 가장 비싸다. 거의 두배에서 세배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난다. 비싼데 좋다. 좋은데 비싸다.

저거 썼다고 벌써 지친다. 손가락이 아프다. 글씨도 예쁘게 안 써졌는데 다시 쓸 엄두가 나지 않으니 얼른 지그 캘리그래피 펜으로 넘어가 본다. 트윈팁이 특징이다. 한쪽은 2.0, 한쪽은 3.5. 하지만 어쩐지 3.5 굵기인 쪽은 잘 쓰지 않게 된다. 내가 능숙하지 않아서 예쁘게 안 써져서인지도 몰라. 결국 2.0인 쪽만 쓰고 있는데 이건 뭐 트윈팁인 제품을 산 의미가 없잖여. 가격은 2100원 선.

이제 파버카스텔 PITT 아티스트 펜이다. XS부터 S, F, M을 넘어 쭉쭉 가다가 SB, 1.5까지 다양한 굵기의 제품을 내놓는데 내가 산 건 M과 S이다. 설명을 보니 방수 기능이 되는 수용성 인디언 잉크를 썼다고 하는데 방수 기능이 되는 수용성 잉크...? 방수... 수용성...?......??? 가격은 2800원 선.

사실 이쯤 되니 깨닫는 것이라고 적었으나 이미 한참 전에 깨달았다. 내가 괜한 일을 시작했구나. 손가락이 너무 아파. 그래도 리뷰한다. 으으 노장 투혼. 파버카스텔 에코 피그먼트 펜. 0.5짜리는 팁이 단단하고 0.3과 0.1은 꾹 누르면 들어갈 것처럼 무르다. 고품질의 인체공학적 그립이라는데 잘 모르겠고 손이 아프다. 장시간 사용 가능하고 빨리 마른다는데 장시간 써보기에는 이제 내 팔이 노익장을 과시하기에도 지친 것 같다. 팔이 아프므로 리뷰는 여기에서 슬슬 마치............

...... 이렇게 하고 안녕하면 좀 무책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봐서 알겠지만 펜이 거기서 거기다. 비슷한 가격대에 비슷한 느낌이다. 모두 그림 그릴 때 선 따려고 샀던 제품들이라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비교해 주는 리뷰를 찾지 못해서 없으면 내가 만든다는 심정으로 적어 보았다. 그러니 비교 대상도 있어야지. 원래 국민 볼펜 모나미 153 볼펜을 찾으려 했으나 모나미도 약에 쓰려면 없네. 아마 리뷰 다 쓰고 올리고 나면 방구석에서 나올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모나미 볼펜을 찾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지도. 그래서 꽤 흔한 편인 유니 제트스트림 볼펜으로 글씨를 써 보았다. 포토샵을 하지 않은 상태이니 이 사진을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펜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반드시 키보드로 리뷰 써야지. 다시는 키보드를 무시하지 마라. 너 때문에 손목이 다 나갔으니까 책임져. 예, 알겠습니다! 키보드소스님!

이 리뷰가 오늘도 그림 그릴 때 선을 딸 펜으로 무엇을 살지 고민이거나, 캘리그래피를 시작하거나 다이어리를 쓰려는데 펜 한 자루에 선뜻 1천 원 짜리 2장을 내기에는 부담스러운, 알파문구나 교보문고 핫트랙스 등지를 하염없이 방황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적절한 안내서가 되길 바라며. 좋은 잉크 낭비였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kooo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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