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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Oct 27. 2016

이러다 먼 훗날 에코백 전시를 열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지직 / 대림 미술관 닉 나이트 이미지 에코백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모든 사진은 당신이 쉽게 가볼 수 없는 장소로 당신을 이끈다." 이것은 사진작가 닉 나이트가 한 말이다. 갑자기 이런 문구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닉 나이트 사진전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뜬금없이 지름과 쇼핑으로 점철된 이 카테고리에서 사진전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아래로 내리면 나오겠지만 더 읽기 귀찮으면 사진전 리뷰만 보고 가시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가라는 문구가 팸플릿에 적혀 있었는데 그건 대체 누가 정하는 건가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가 중 한 명 이런 문구도 아니고 말이다. 홍보를 하려고 했는데 조금 과장이 심한 건 아닐까. 아무튼 굉장히 인상적인 사진들인 것은 분명하다. 

'닉 나이트 사진전–거침없이, 아름답게'(NICK KNIGHT: IMAGE)라는 제목처럼 거침없고 아름다운 사진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날 지른 물건은 좀 더 스크롤을 내리면 등장한다.

대림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들은 대부분 사진을 찍는 것이 허용되어 있어서 인증샷 남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이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기에 한 컷 담아 봤다. 질 샌더와 함께 한 작품으로 제목은 Tatjana Patitz for Jil Sander, 1992.

세상을 생각보다 더더욱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강렬한 사진이 많았다. 섹션이 6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1970년대 영국 스킨헤드 섹션은 사실 사진들이 무서워서 빨리 넘어갔다. 아이디(i-D) 매거진의 의뢰로 100명의 셀러브리티를 촬영한 초상사진. 요지 야마모토, 질 샌더 등 패션 디자이너들과 작업한 디자이너 모노그래프 외에도 페인팅 & 폴리틱스, 정물화 & 케이트 섹션이 볼만했다. 알렉산더 맥퀸과의 오랜 협업을 회고하는 영상과 3D 스캐닝 등의 실험적 표현기법을 결합한 최신작들로 구성된 패션 필름이 마지막 섹션이었다.

이날 본 사진 중 가장 인상에 오래 남았던 작품.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굿즈로 만날 수 없었다. 아마 있었으면 질렀겠지.

그렇게 닉 나이트 사진전을 잘 보고 왔다고 하고 끝나면 이것은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의 자세가 아니다. 원래 이런 전시에 가면 티켓값 못지않게 배보다 배꼽스러운 지름을 해줘야 한다. 이날 꽂힌 것은 에코백. 정식 명칭을 모르겠으니 닉 나이트 이미지 에코백이라고 하기로 한다.

닉 나이트 이미지 에코백은 총 두 종류다.  LG 그램 노트북을 넣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한 사이즈의 에코백인데 둘 중에 뭘 살까 고민하다가 '살까 말까 고민되면 둘 다 사라(작자 미상)'는 희대의 명언이 생각나 둘 다 질렀다. 대림 미술관 회원이거나 VIP 티켓을 소지하고 있으면 10% 할인이 된다. 하나당 가격은 1만 2000원. 총 2만 4000원어치를 지르고 2400원을 할인받은 것인데 이상하게 이럴 때는 2만 원 넘게 쓰고도 2400원을 번 것 같은 계산 오류와 자기 합리화가 발 빠르게 이뤄진다. 역시 지름병은 불치병이 맞아.

개인적으로 자수 에코백이나 어정쩡한 프린팅 에코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에코백은 반질반질하게 프린팅 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다소 큰 사이즈임에도 사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

블랙과 레드, 그리고 화이트의 조화가 강렬하다. 요지 야마모토와 함께 한 작품으로 제목은 Red Bustle, Yohji Yamamoto, 1986. 이 작품은 사진으로 봤을 때도 강렬했다.

마음에 드니까 근접 샷 한 번 더. 종잇장 같지 얇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조금 더 도톰하고 1만 5000원까지 받았어도 살 의향이 있었는데. 2만 원 넘어가면 안 사. 이번 전시에서는 블랙 에코백을 판매하지 않는데(지난 전시에서는 검은 에코백을 팔았었다 이걸 내가 왜 알고 있지), 사진들이 예쁜 게 많아서 다른 작품이 들어간 블랙 에코백 같은 굿즈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림 미술관형... 에코백은 두 종류가 전부잖아요. 나한테 왜 그래요...

안에 주머니가 있다. 에코백 안주머니를 잘 쓰는 사람들은 유용하게 잘 쓰던데 난 예전에 이 작은 주머니에 립밤과 지폐 몇 장을 넣어놓고 그대로 세탁기에 넣어 돌려본 유쾌 상쾌한 경험이 있어서 잘 쓰지 않는다. 물론 나처럼 에코백 세탁을 귀찮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탁기에 에코백을 넣고 돌리는 건 '에코백 살인' 행위다. 제품 설명에도 세탁기에 넣고 돌리지 말고 오염된 부분만 따로 세척하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 세탁기에 넣겠지. 인간의 귀찮음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아까 사진전에서 나를 사로잡은 사진이 마침 에코백으로 나와 있어 구입했다. 천사 같기도 하고 백조 같기도 하고 마릴린 먼로 같기도 하고 오묘하니 멋지다.

디테일한 느낌은 이렇다. 두 에코백이 하얀 캔버스 천 베이스이긴 하지만 워낙 다른 느낌이라 질리지 않고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닉 나이트 사진전을 다녀와서 기념으로 산 것임'이라는 느낌이 뿜뿜 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예쁜 아트 에코백 느낌이라 좋았다. 이외에도 여러 굿즈들을 팔고 있다. 슬라이드 필름 스타일로 만든 북마크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사진 종류가 너무 적어서 패스. 후드티도 팔고 있었는데 무섭게 본 스킨헤드 사진이 들어가 있어서 패스. (다른 사진이었으면 샀을지도 모르는데. 주머니도 있는 후드티였는데. 따뜻해 보이던데. 검은색이었는데. 디자인 자체는 깔끔했는데.) 참고로 휴대전화 케이스는 아이폰 6와 6S용만 팔아서 갤럭시 노트7 유저는 갤_갤 하고 울었다. 이렇게 에코백이 또 늘었다. 언젠가 에코 나이트 이미지라는 에코백 전시회도 열 수 있을 기세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고 또 예쁜 에코백을 발견하면 지르겠지. 그게 지름병을 앓는 자의 숙명이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kooo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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