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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Oct 28. 2016

진짜 좋은 놈이었어 나를 언제 때릴지 모르는 것만 빼면

지지직 / 故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언제나 중요 공지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바로 그 삼성이 스마트폰을 만들랬더니 스마트 웨폰으로 만들어버린, 시한폭탄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을 쓰고 있는 이용자, 아직도 갤럭시 노트7을 교환, 환불하지 않는 이용자가 수십만에 달한다고 연일 언론에서 때려대던 바로 그 이용자였기 때문이다.

배터리 충전 용량 60% 제한. 어째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갤럭시 노트7을 이미 한 차례 교환을 받은 뒤라서, 어지간한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12월까지는 버텨볼 생각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배터리 충전 제한을 걸기로 하겠다는 일종의 통보였다. 너는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늘 이런 식이지.

이제는 여러분도 익숙한 '그 풀밭'이다. 9월 초부터 두 달가량 갤럭시 노트7을 써보고 느낀 것은 사람으로 치자면 여자가 화자일 경우 '호호호 우리 노트7 씨, 나한테 너무 잘해줘. 못하는 것도 없어. 그야말로 스펙 쩌는 벤츠 남친이야. 술 마시면 나를 때리는 거 빼곤' 같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데이트 폭력 애인이다. 왜 스마트폰을 만들어 놓고 팔질 못허누! 어쩐지 삼성이 일냈다 싶더라니.

지금 갤럭시 노트7 교환이나 환불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 건 소비자가 1차 교환 때 한 번 당한 게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갤럭시 기어도 함께 반납해야 한다, 풀 박스가 아니면 교환이 안 된다, 액세서리를 전부 반납해야 한다 등 말이 많다가 나중에는 심지어 S펜이 없는 액정 와장창 상태의 갤럭시 노트7 본체만 가져가도 교환해준다고 방침을 바꿨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삼성에서 바꾸라고 할 때 "예! 드리겠습니다!" 하고 곧바로 바꾸면 호구라는 소리가 나왔다.

고심 끝에 스마트폰 사업부 해체... 가 아니라 고심 끝에 내놓은 방침도 갤럭시 노트7에서 하위 기종으로 교체하는 사람은 다음에 나올 갤럭시 노트8을 반값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인데 솔직히 조삼모사다. 노트7 하위 기종을 반값에 팔고 노트8 제값 받겠다는 거랑 뭐가 다른가. 지금 노트7 하위 기종은 중고로운 평화나라 등에서 이미 그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다. 재용아 국이 짜다. 이 정도 정책이라면 안철수도 간을 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역시 갤럭시 노트7은 너무나 좋은 폰이었다. 나는 노트 시리즈 호갱이다. 원래 갤럭시 노트4를 쓰다가 노트5가 나왔을 때 구입을 고려했으나, 마이크로 SD카드를 쓸 수 없고 배터리도 일체형이라기에 오매불망 다음 버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에는 노트2를 썼고. 그런데 다른 기능들이 매우 향상된 노트7(원래는 노트6였어야 맞지만)을 보니 일체형 배터리의 불편함을 알아버린 몸이 되었음에도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어쩜 이래. 잊으라 하였느냐 나는 너를 잊지 못하였다. (충전할 때는) 가까이 오지 말라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말라. 폭탄을 품은 폰도 아니고 이게 뭐시여.

"노트7 대체재가 왜 없어? 대단한 호갱 납셨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노트 시리즈를 써보지 않았거나 노트 시리즈를 사고도 주로 폰 기능을 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일단 카메라 성능이 뛰어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야경에도 강하고 야경과 인물에도 강하다. 카메라를 들고 간 여행지에서 나중에는 노트7만으로도 야경이 꽤 그럴싸하게 나오기에 카메라는 숙소에 놓고 다녔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더니 미안한테 자기 사진도 네 폰(노트7)으로 찍고 카카오톡으로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런 걸 보면 노트7의 카메라 성능은 따로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

그래 좋다. 카메라는 LG전자 V20, 애플 아이폰7, 구글 픽셀 폰 등 여러 대체재로 갈음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럼 S펜은? 애초에 S시리즈가 아니고 노트 시리즈를 사는 사람들이 펜을 쓰기 위해서 살 경우가 많은데, 삼성 페이나 홍채인식 같은 다른 장점은 차치하더라도 카메라가 좋으면서 동시에 펜도 쓸 수 있는 폰을 살펴보면 선택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그림도 그리고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는 사람은. 그래서 결국 노트4로 회귀했다가 노트8을 기다릴 생각인 것이고.

그리고 홍채인식 써보니 너무 편해. 보안카드 찾고 공인 인증서 찾고 할 필요 없이 게슴츠레 눈만 뜨면 바로 입출금 완료. 삼성 페이도 써보니 너무 편해. (노트4는 삼성 페이를 지원하지 않는다.) AOD 기능도 너무 편해. (노트4는 AOD를 지원하지 않는다.) 얼웨이즈 온 디스플레이. 회의 시간에 대체 언제 끝나나 애꿎은 폰 화면을 껐다 켰다 하지 않아도 언제나 시계가 떠있어서 좋았는데. 그랬잖아. 우리 처음엔 좋았잖아.

나는 웬만해선 눈물이 안 나는 소비자인데 눈물이 나네. 방수 기능은 쏘쏘. 어차피 물에서 쓸 일이 거의 없어 주로 액정이 더러워졌을 때 씻는 정도로만 썼기에 저건 뭐 없어도 그만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찍으려고 물에 넣었다 빼면서 다시 노트7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노트4는 물에 넣으면 망하지만 노트7은 물에 넣어도 안 망한다. 엉엉. 사실 노트7의 방수 기능은 충전할 때 폰이 터지지 않도록 수랭식으로 쓰게 하려는 재용이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서프라이즈 진실 혹은 거짓.

예전에 자취방 구하던 시절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월세 때문에 큰 오피스텔에서 작은 고시텔로 옮겨야 했는데 친구가 그랬다."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는 옮길 수 있어도 한 번 큰 집에서 살아본 사람이 작은 집으로는 못 갈 걸." 하지만 나는 옮겼다! (당당) 그리고 내내 예전 오피스텔의 채광과 여백의 미를 그리워했다. (오열) 아마 이번에도 그렇겠지. 노트7의 카메라를 쓰며 개안한 듯한 신세계를 경험했는데 노트4로 돌아오니 아 화질형... 갑자기 왜 그래요... 분명히 노트4만 알았던 8월까지는 만족스러웠는데... 꼭 영화 '아저씨' 보고 나와서 잘생겼던 내 남자가 갑자기 안 잘생겨 보이는 그런 느낌적 느낌이랄지...  재용아... 재용아... 자니...?


갤럭시 노트7을 쓰는 사람이라면 데이터 옮기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을 것이다. 벌써 한 차례 교환하면서 해보기도 했고. 이번에도 교환이든 환불이든 받으려면 데이터를 옮겨야겠지. 갤럭시 S7, S7엣지, 노트7부터 기본 설치된 스마트 스위치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서 데이터를 옮기기로 한다. 어지간한 폰 설정부터 문자와 통화내역, 배경화면, 알람 등을 옮겨주니 편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트7 유저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된 기능은 아니었을까... "이 폰은 곧 터질 거야... 너도 열통이 터지겠지... 그러니 데이터라도 쉽게 옮겨두라고... 후후... 나의 마지막 배려다..."

여하튼 그렇게 삽질과 데이터 대이동을 마치고 갤럭시 노트4에서 갤럭시 노트7으로 갔다가 두 달 만에 갤럭시 노트4로 돌아왔다. 아주아주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2달간 새로운 남들이 써보지 못한 기계를 써봤다는 것으로 정신승리를 해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길에 오가며 버린 시간이 너무 많고... 교환이나 환불 방침도 1차 때에는 전사에 공유된 게아니라서 30분이면 된다는 내용을 보고 갔다가 소통이 안 되어 제품 교환하는 데 1시간 가까이 잡아먹었다. 그나저나 갤럭시 노트7 액세서리는 어떻게 하지. 삼성 몰에서 산 건 환불 처리하기로 했지만 일반 디자인 샵에서 산 케이스나 강화유리필름 등은 환불이 가능한지, 만약 가능하다면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알아봐야겠다.

그나마 나는 알뜰폰 유저라서 약정에 매여있지 않아 변경(과 이번 환불)에 주저함이 없었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이 통신사에 매인 몸임을 고려한다면 삼성은 다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재용아 그라믄 안 돼... 그나마 노트7은 나노유심이고 노트4는 마이크로 유심이라 원래 쓰던 유심을 썰었었는데 그게 원래 폰에 다시 맞아서 다행이었지 이거 인식 안됐으면 맞는다 진짜... 진짜 재용아 그라믄 안 돼... 폰 잘 팔릴 땐 이재용폰이었다가 터질 땐 고동진폰이었다가 다시 리콜하고 잘 나가면 이재용폰이었다가 다시 터지니까 고동진폰 하고 그라믄 안 돼...

일단은 노트8을 기다리는 동안 노트4를 쓸 생각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마음은 갈대. 그리고 이것은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병마와 싸우며 쓰는 일지다. 조만간 어떤 폰이 나 같은 직장인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까. 

故 갤럭시 노트7 (2016~2016). 

기계 깨끗하게 오래 쓰기로 유명한 내 손에서 최단기간 머무른 너. 고폰의 명복을 빈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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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kooo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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