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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Nov 02. 2016

석양이 진다... 자 이제 어둠의 다크에 물들 시간이다

지지직 / 미장센 헬로 버블 다크초코턴컬러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털에 색칠놀이 좀 해본  인간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피할 수는 없다. '뿌염(뿌리 염색)'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도 그랬다. 성급한 일반화 아니냐고? 들켰네. 하지만 일부러 한 투톤 헤어가 아닌 이상 내 머리를 강제 투톤으로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장인은 늘 바쁘고 미용실에 갈 시간은 없다. 물론 주말에 가면 되는데 주말은 놀아야지. 그래서 집에서 셀프 염색을 하기로 했다. 몇 차례 셀프 염색에 성공하며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지만 어두운 컬러는 처음이라 적잖이 걱정이 됐다. 나의 선택은 그나마 익숙한 걸스데이 소진의 얼굴이 새겨진 미장센 헬로 버블 다크초코턴컬러 셀프 버블 염색약. 온라인에서는 배송비 포함해서 6500원이 최저가 선인 듯. 올리브영에서는 1만 3000원부터 6000원 선까지 매번 색상에 따라 가격을 바꿔가며 파는데 어제 보니 왓슨즈도 그렇더라. 점점 늘어나는 팔로... 가 아니라 점점 밝아지는 컬러가 신경 쓰이던 차에 다크초코턴컬러가 반값을 빙자한 원래 가격에 팔기에 냉큼 두 개를 집어왔다. 찬 바람이 불 때면 역시 진리의 흑발!

다크초코턴컬러. 이름을 볼 때마다 카페 모카나 다크 초콜릿이 먹고 싶어 진다. 소진은 입술에 무슨 제품을 바른 걸까. 색이 예쁘네. 베네피트 포지틴트 느낌인데. 아무튼 이 녀석과 함께 슬슬 내가 태어난 세계인 어둠의 다크로 돌아가 볼까.

솔직히 암모니아 향이 나지 않는 건 맞는데 플로럴 부케를 담은 듯 향기롭지는 않다. 미용실에서 염색해도 눈이 매울 때가 있는데 그 정도로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에 감지덕지해야겠지.

한국인이 참으로 설명서 안 읽기로 유명한 민족인데 나는 별종이라 설명서는 되게 자세히 읽는다. 그리고는 안전을 위한 패치 테스트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뭔가 말 잘 듣는 반항아의 느낌. 그렇지만 이건 내 피부가 무쇠로 만들어져서 가능한 일일 것이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안 보이는 부분에 패치 테스트를 해보고 문제없을 때 염색을 진행하길 바란다. 예전에 미용실 선생님 왈 버블 염색이 냄새만 심하지 않을 뿐 모발에는 되게 좋지 않다는 열변을 토했던 게 생각나서 참고로 적어본다. 이쪽엔 문외한이라 그게 미용실 특유의 우리 집 와서 염색하라는 상술인지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큰 설명이 필요 없는 구성품.

진짜 말 그대로 섞고 누르고 바르면 완성이다. 처음 버블 염색이라는 것을 알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서 1시간이면 가뿐하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으니. 

지푸라기나 옥수수수염이 아니다. 오늘의 마루타, 나의 머리털이다. 애쉬 카키 컬러를 두 차례 먹인 뒤 일주일 만에 초록 잔디에서 옥수수수염으로 돌아온 나의 머리. 덕분에 개털이다. 실험체로 안성맞춤이군. 굿굿. 

귀찮지만 과정 샷을 찍어보기로 한다. 일단 2제를 열고 1제와 시크릿 앰플을 넣어 흔들어 준다.

좌우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20회 정도 흔들어 주면 짜잔. 머리에 바를 염색약 완성. 설명서에 따르면 좌우가 아니라 칵테일처럼 상하이 상하로 흔들면 멸망이라는데 6500원을 실험에 쓰고 버릴 정도로 순실하거나 유라한 사람은 아닌지라 한 번도 시도해보지는 않았다.

자타공인 프로 셀프 버블 염색러인 나의 조언은 버블 염색을 잘 하려면 설명서를 자세히 읽으라는 것. 일단 정수리와 바깥쪽부터 바르고 시작해야 얼룩이 지는 걸 최대한 막을 수 있다. 다른 부분에 염색약을 바르는 동안 저 부분부터 염색이 되기 때문이다. 이 컬러를 가지고 셀프 버블 염색에 도전했다가 머리에 얼룩을 만든 젖소와 달마티안들을 블로그 검색을 통해 수두룩하게 보았다. 그러니 지드래곤 급의 소화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신중 또 신중하자. 

이제 집도할 시간인가. BGM은 드라마 '하얀 거탑'의 The Great Surgeon 정도가 좋겠군.

폼 클렌저 같이 생긴 염색 약통을 밑에 뭐가 묻어도 지장이 없거나 어머니께 등짝이 맞지 않을 곳에 놓고 작업하도록 하자. 괜히 하얀 양변기나 목욕 의자 위에 올려놓고 했다가 나중에 거기도 무료로 염색이 되는 신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 특히나 진한 색이라 대충 흘려버렸다가 타일 사이사이가 검게 염색된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주의 또 주의.

몇 차례 펌핑하면 이런 거품이 나온다. 초반엔 연한데 계속 염색을 하다 보니 진한 보라색으로 바뀐다. 경험상 진한 거품이든 연한 거품이든 결과물은 똑같았다. 늘 생각하지만 이쪽엔 문외한인지라 보라색을 발랐는데 고동색이 나오는 게 마냥 신기하다.

야생의 고사리가 나타났다! 집도한 지 15분 정도 지났을 때. 벌써 훅 진해진 게 느껴진다. 사전 공사를 해놓지 않아 목과 귀도 진하게 물들었다. 끝나고 닦으면 닦이긴 하는데 피부가 예민하다면 귀에 커버를 씌우거나 콜드크림처럼 유분기 있는 제품을 살짝 발라두고 작업하는 게 좋다. 난 귀찮으니 그냥 고고. 셀프 염색을 할 때 또 한 가지 간과하고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 바로 뒤통수. 우리가 증명사진처럼 앞만 보고 살아갈 것이 아니기 때문에 뒤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거품을 파워 펌핑해 쳐발쳐발해준다. 앞이든 뒤든 기본적으로 두피 쪽부터 아래로 작업하며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아래는 정 아니다 싶으면 청와대 수석비서관 잘라내듯 잘라내면 되지만 위에서부터 얼룩덜룩하면 되게 기분이 얼룩덜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부 도배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추천한다. 속은 여차하면 묶고 다니며 가릴 수 있지만 밖이 그러면 참으로 모발의 격이 올라가는 기분이라 술이 당기는 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애프터 사진. 작업 전부터 원래 머리 색이 워낙 밝은데 + 이 컬러를 가지고 셀프 염색한 사람들 후기에 일관되게 '겁나 진해져요'라고 적혀 있어서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고민했다. 이럴 땐 역시 눈대중이지. 설명서대로 딱 바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30분 동안 기다렸다가 곧장 구정물(?)이 빠질 때까지 헹궈냈다. 계속 씻어도 씻어도 검정 물이 나와서 벼루를 씻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검은 물이 빠진 뒤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1분 정도 기다렸다 다시 헹궈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말린 뒤에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다. 딱 봐도 어둠의 다크에 한껏 물든 아우라가 모니터 밖으로도 느껴진다.

비교를 위한 정수리와 옆머리. 왼쪽이 염색 전이고 오른쪽이 염색 후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무보정 사진이라 최종 머리색은 오른쪽 사진의 평균치 정도, 고동색으로 나왔다고 보면 맞다. 보통은 이런 염색약 후기하면 스스럼없이 얼굴 샷도 뿌잉뿌잉 올리고 하던데 난 스스럼 있으니까. 어차피 중요한 건 내 얼굴이 아니라 머리털 색 변화가 아닌가. 6500원에 이 정도면 성공. 스타벅스에서 2017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마셔야 할 시즌 음료 이를테면 토피넛 라테 그란데나 벤티 사이즈 한 잔 정도 값으로 헤어 체인지도 하고 기분 체인지도 할 수 있었다. 기장은 어깨선을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한통으로도 충분했다. 괜히 두 통 샀다. 저건 대체 언제 쓰지. 중고나라에서 파는 사람도 있던데 직거래하는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내가 마음이 변해 다시 탈색했다가 턴 컬러 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컬러로 염색한 사람들 말이 10여 일 지나면 물이 조금 빠지면서 적갈색으로 된다고 하던데 그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이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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