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직 / 쿠론 스테파니 멀티 명함 지갑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이것은 쿠론 스테파니 멀티 명함 지갑이다. 지네도 아닌데 신발이 많은 것처럼 돈도 없고 지갑은 많으면서 또 카드지갑을 산 이유는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면세점을 들리지 않으면 뭔가 진 것 같고 출국 정보를 등록하면 받는 적립금부터 주말 한정 적립금까지 적립금이 많이 쌓였는데 쓰지 않으면 적립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그냥 사고싶었다고. 물론 안 사면 100% 할인인데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에게는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 덕분에 지금 손가락 쪽쪽 빨다가 말려서 키보드 치고 있다.
널...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지만 휴대전화로 찍으면 접사에 한계가 있다. 해 질 녘에 찍어서 붉은 기가 살짝 돌지만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1번 필터(북한에서 제공하는 1번 아님)를 먹여서 그나마 원래 색에 좀 비슷하게 만들어보았다. 대놓고 코끼리 몸통 회색인 카드지갑이다. 딱 봐도 절대 때 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걸 때 타게 쓸 정도면 좀 씻어라. 온라인 구매가 15만 원대인 제품인데 면세점에서 적립금 신공으로 샀기 때문에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사진까지는 해 질 녘에 찍은 후에 1번 필터를 먹여 보정했다. 위에 사이즈 비교를 위해 놔둔 스타벅스 적립카드를 보면 알겠지만 카드의 금색이 죄다 날아간 상태이니 참고할 것. 그래도 붉은 기가 있는 사진보다는 노출 오버가 나을 것 같아서.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들고 있어도 기본 무게와 기본 두께가 있어서 돈이 좀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에 딱이다.
열어보면 이런 모습. 이 사진은 무보정인데 가장 실물 색감에 가깝다. 안쪽은 코코아색이라 때가 잘 타지 않을 것 같고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난 귀찮아서 에코백도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리는 사람인지라 때 타는 게 제일 싫다. 단추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고 덮개에도 수납공간이 있어서 출입증이나 지하철 정기권을 넣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열어서 가져다 대면 "승차권을 한 장만 대 주세요"라는 안내 멘트를 듣지 않아도 된다.
이럴 때일수록 5만 원권 몇십 장 정도 뽑아서 빵빵하게 채워 넣은 허세샷을 찍어야 하는데 일단 잔고도 없을뿐더러 원체 현금을 들고 다니질 않아서 현금만 받는다는 배짱 두둑한 택시기사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 넣어둔 1만 원 권이 전부다. 앞뒤로 수납공간이 있고 가운데에는 동전지갑 용도로 쓸 수 있는 지퍼 달린 공간이 따로 있다. 평소에는 돈도 없고 동전도 없어서 거스름돈 혹은 얇은 USB 혹은 충전할 때 필요한 USB-C타입 젠더 등을 넣고 다닌다.
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흔들린 사진!!! 그런데도 올리는 이유는 빵빵하게 채웠을 때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해서 다급하게 찍는 바람에 한 장 밖에 안 찍었다. 이 카드지갑은 재킷이나 코트 주머니에 넣으면 불룩해서 조금 없어 보이고 패딩처럼 두툼한 옷 주머니에 넣으면 적절히 숨길 수 있다. 그냥 들고 다니는 제일 낫다. 하지만 귀찮다. 조금 더 얇았어도 좋았을 텐데.
원래 카드지갑 없이 휴대전화 케이스에 모든 걸 맡기는 타입이었지만 요즘따라 휴대전화를 생폰으로 쓰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올라 별도로 들고 다니게 된 카드지갑인데 꽤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엄청 튼튼하고, 때 안 타고, 수납공간 많고, 각져있고(개인 취향). 뭘 더 바라는가. 개인 취향따라 다르겠지만 지갑 뒷부분에도 카드 한 장 정도 넣을 포켓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나는 단추 여닫는 것마저 귀찮은 파워 귀차니스트이니까.
쓰면서 큰 단점은 발견하지 못해서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문제가 있다. 너무나 흔한 아이템인 것! 아마도 적립금 먹여서 사기에 가방은 부담스럽지만 뭐라도 지르고 싶은 직장인들이 면세점에서 눈독 들이다 산 게 이 제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리뷰 써야지 생각하면서 들고 커피숍 갔다가 이틀 동안 두 명이나 쓰는 걸 봤다. 모두 2030 여성이었다. 남과 같은 클론 제품, 국민 카드지갑은 곧 죽어도 못 쓰겠다는 사람에게는 비추 하겠지만, 나처럼 만사 귀찮은데 때 안 타고 튼튼해서 막 굴릴 수 있는 심플한 카드지갑을 찾는다면 추천한다. 다만 정가에 사면 호구이니 반드시 적립금 찬스를 노리길 바란다. 남들이 같은 제품 10만 원 넘게 주고 살 때 가마솥 밑바닥 누룽지 긁듯 긁어모은 적립금으로 9만 원 대에 사는 게 가장 짜릿하지 않은가.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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