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컴퍼니 Nov 08. 2016

지금 당장 인간 삼나무가 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이니스프리 퍼퓸드 디퓨저 삼나무&삼나무 가로수길 핸드크림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뭐 언제는 충동구매가 아니었겠느냐마는. 있어 보이는 서두로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다. 추위를 피할 겸 이니스프리에 들어갔다가 원래도 즐겨 쓰던 삼나무 핸드크림이 패키지만 바뀐 채로 팔리고 있기에 쭉 짜서 냄새를 맡아보고는 키야 역시 좋구나 하다가 오 어쩌면 이 향으로 디퓨저나 향수도 내놓지 않았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역시나 있었다. 그래서 온라인 후기고 뭐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냉큼 집어왔다. 난 삼나무향 빠니까. 그렇게 살펴볼 제품은 이니스프리 퍼퓸드 디퓨저 1015 삼나무와 또다시 사버린 이니스프리 삼나무 가로수길 핸드크림.

사랑해요 삼나무! 사랑해요 절간 냄새!

사려니숲길에서 만나는 이슬 맺힌 삼나무의 상쾌함을 담은 그린 시트러스 계열의 디퓨저라는데 긴 말 필요 없고 삼나무향만 나면 된다.

문득 드는 생각이 이니스프리는 제주도가 없었으면 무엇으로 장사해 먹었을까. 부산 해운대 앞바다의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짭조름한 바닷물과 갈매기들의 쾌활함과 산만함을 담은 청량한 블루 워터 디퓨저 뭐 이런 식으로 네이밍 했으려나. 아무튼 제주와 함께 이미지 마케팅을 잘 한 덕에 자연주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제품명의 4자리 숫자는 향을 영감 받은 날짜를 의미한다고. 영감...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우리 따끈따끈한 삼나무 디퓨저 찡... 어쨌든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촉촉한 아침 이슬이 온 세상을 뒤덮고 하늘까지 닿을 듯한 삼나무 가득한 숲 속 사이로 상쾌함을 더해주는 맑은 새소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지 않은가.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도 화장품 제조사도 이니스프리 홍보팀 관계자도 삼나무도 안다. 그런 향이 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향기 나는 제품을 살 때 제일 중요한 건 저런 허세 넘치는 문구(하지만 저런 문구가 향을 상상하는 데에는 꽤 도움이 된다. 물론 잘 쓰였을 때 한정)보다는 탑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에 어떤 것이 들어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소위 아재향, 목욕탕에서 아저씨들이 퐉퐉 뿌릴 것 같은 진한 남자의 스킨 향기가 싫으면 타바코나 우디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피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잔향이 오래가길 원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후다닥 날아가는 시트러스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피하는 게 돈을 아낄 수 있다거나 하는. 이 삼나무 디퓨저의 탑 노트는 Mandarine, Aquatic accord, 미들 노트는 Green leaves, Magnolia, Lily, 베이스 노트는 Cedarwood, Amber, Musk다. 대충 만다린 향으로 시작해서 백합이랑 풀냄새 좀 나다가 삼나무 향과 머스크 향으로 마무리되는 디퓨저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어차피 계속 리드 스틱을 꽂아놓고 쓸 거라서 향 구분이 무의미하긴 하다.

참 단출하게도 생겼구나. 안녕.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디퓨저 보틀이 너무 화려해도 정신산만 해서. 가뜩이나 내 방은 더 정신산만 하니까. 오죽하면 이렇게 밖에 나와서 리뷰용 사진을 찍었겠나.

동네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돈 독 오른 이니스프리가 디퓨저 팔면서 리드 스틱도 안 끼워 준대요! 앞서 본 이니스프리 퍼퓸드 디퓨저 1015 삼나무의 가격은 100ml에 2만 원. 그런데 리드 스틱을 10개에 2000원으로 따로 판다. 거 3~5개 정도만 디퓨저 팔 때 끼워줘도 되는 거 아니요?

리드 스틱을 어차피 따로 사야 한다기에 그냥 나무젓가락을 갈아서 써볼까 하다가 궁상맞은 것 같아서 사기로 했다. 기본형 외에도 다른 종류의 리드 스틱을 팔고 있는데 플라워 리드 스틱은 5000원, 나뭇가지 모양 리드 스틱은 4000원이다. 어차피 사야 할 리드 스틱이면 특이한 걸 사볼까 싶어 나뭇가지 모양을 만지작대자 직원이 밀착 마크하며 "손님, 그건 예쁘긴 한데 또 찔린다고 불편해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기본형이 제일 많이 나가세요."라는 이상한 극존칭을 쓰며 한껏 만류하는 게 아닌가. 내가 잔고 부족한 '행거(행복한 거지)'인 걸 들킨 건가. 결국 기본형으로 샀다. 난 팔랑귀니까.

오오 깔끔. 향기는 예상대로 좋다. 이니스프리에서 나온 삼나무향 핸드크림을 써본 사람이라면 그 향에서 조금 더 머스크향이 진한 향을 떠올리면 될 듯. 처음에는 잘 퍼져나가지 않는 것 같았는데 저걸 찍고 내려놓다가 침대에 왈칵 쏟아서 온 방안이 순간 사려니숲길로 변하는 매직을 만끽했다. 어휴 커피나 우유가 아니라 다행. 덕분에 밤새 삼나무 숲에서 노숙하는 기분이었다. 리드 스틱은 조금 꽂아보고 발향이 잘 안 된다 싶으면 개수를 조절하자. 이제 이 디퓨저 덕에 올 겨울 내 방의 모든 게 숲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원래 쓰던 이니스프리 삼나무 핸드크림을 다 써가서 새로운 놈으로 집어왔다. 하지만 예전 패키지가 더 예쁘다. 공병처럼 덜어서 넣을 수도 없고 슬프다.

삼나무 핸드크림이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삼나무 가로수길 핸드크림. 로드샵 핸드크림이 안녕 핸드크림인 줄 알았지 그냥 로션인데 또 속니 제형일 때가 많은데 얘는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록시땅 시어버터 핸드크림이나 카밀 핸드크림 같은 보습력을 기대하면 지는 거다. 얘는 향 때문에 사는 거야. 인중에 발라놓고 홀로 취하고 싶은 향이다.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삼나무 덕후인데 시중에 나온 제품 중 자극적이지 않은 삼나무향 제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왜죠. 왜... 왜... 절간 냄새를 내놓지 않는 거야...!

핸드크림의 제형은 대략 이렇다. 촉촉하게 마무리된다.

이제 삼나무 향이 진동하는 방에서 핸드크림을 온몸에 쳐발 쳐발하면 그야말로 인간 삼나무는 따놓은 당상이다. 이러다 조만간 삼나무 한 그루 심을 기세로 글을 마친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쿠컴퍼니 KOOOCOMPANY :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 kooocompany@gmail.com
홈페이지 kooocompany.com
네이버포스트 post.naver.com/kooocompany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kooocompany

브런치 brunch.co.kr/@kooocompan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