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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Nov 15. 2016

배고플 때 흙 먹는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가 되는 방법

지지직 / 오레오 초콜릿 쿠키로 화분 케이크 만들기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이것은 화분을 가장한 화분 케이크이다. 화분이랑 풀 빼고는 다 먹을 수 있다. 이가 튼튼 위 탄탄하다면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화분과 풀도 먹어도 좋겠지만, 그럴 의도로 만든 초콜릿 케이크는 아니므로 패스. 얼마 전 빼빼로데이를 맞아 항간에 전설처럼 떠돌던 화분 케이크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봤다. 고로 오늘의 리뷰는 화분 케이크 만들기. 자취 생활 수년차에도 주방에서 뭔가 만지작 댈 일 잘 없는 없는 이 몸이 손수 화분 케이크 만들기에 도전했다. 그 고난의 행군이 궁금하다면 따라오시라.

화분 케이크 만들기를 위한 준비물. 화분으로 쓸 화분 모양의 용기, 카스텔라 빵, 조화 혹은 생화, 우유, 오레오 쿠키, 석기시대 등의 초콜릿, 생크림을 만들기 위한 휘핑크림 가루. 다이소, 편의점, 파리바게트, 그리고 온라인에서 재료들을 드래곤볼 모으듯 조금씩 구입했다. 참고로 배송료 포함해서 가격대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완제품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먼저 화분으로 눈속임할 용기를 깨끗하게 씻어서 대령한다.

그리고 우리 벌꿀과 신선한 계란으로 만들었다는 카스텔라 포장을 벗긴다. 80g에 250kcal. 벌꿀도 쪼오금 들어있다고 한다. 내가 만드는 빵을 넣는 것보다는 맛있겠지 싶어서 샀다.

잘 뜯어서 담아준다.

화분 케이크의 알파요 오메가인 흙을 만들 차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쿠키라는 오레오 쿠키 오리지널을 구입했다. 1 봉지에 245kcal. 총 2 봉지가 들어있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포장지에 초콜릿 샌드위치 쿠키라고 쓰여있구나. 샌드위치라... 갑자기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서브웨이 BLT 샌드위치에 스위트 어니언 소스 추가해서 먹고 싶잖아. 아 이따 먹어야지.

(참고로 손 빡빡 씻음. 받는 사람은 업장의 청결 상태를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찝찝해서 안 됨. 밑에 깔개도 두 번 갈았음.) 여하튼 이렇게 챱챱 분해한 다음에,

제일 맛있고 살찌기 좋은 크림은 안타깝게도 숟가락 등으로 걷어낸다. 크림은 화분 케이크에 안 쓸 거니까 먹어도 무방하다. 처음으로 내가 먹어도 되는 아이템이 생겼다. 그런데 나오는 족족 크림만 다 먹으면 살찔 것 같아서 오레오 몇 개는 "어머 크림이 잘 안 떨어지네 별 수 없이 먹어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는 걸"이라고  명연기 하며 먹었다. 오레오, 로맨틱, 성공적.

렇게 흙으로 돌아갈 오레오 쿠키 형제들이 생겨났다. 뒤에 보이는 형제들도 크림을 덜어낸 후 흙으로 돌려보내 주자.

이제 지퍼백에 넣고, 떠올리는 것만으로 분노 게이지가 치솟고 화를 주체할 수 없는 대상을 떠올리며 한껏 박살 내준다. 퐉! 퐉! 퐉! 퐉! 갑자기 파워가 200% 된 느낌. 아 그런데 초기에 큼직한 쿠키를 부술 때는 도구를 쓰자. 손이 아프다.

생각보다 쿠키가 단단해서 잘게 부수는 게 쉽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부수는 공정을 계속하면 굉장히 흙스러운 오레오 흙이 완성된다. 잘게 부수는 게 포인트. 덜 부수면 오레오 끝부분 일부가 꼭 콩벌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쿠키 흙을 만들어 두고, 손이 아프니까 다음 작업을 해볼까.

그리고 나는 이 지점부터 슬프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 원래 파리바게트에서 바게트 빵 등에 발라먹으라고 파는 생크림을 사와 몸과 마음 편하게 작업할 생각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생크림이 모두 동났다는 것. 안돼!!! 생크림 만드는 거 팔 아프단 말이야!!!!!! 그래서 일부러 가루 있어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거였는데!!!!! 혹시 몰라서 다른 매장을 갔는데도!!! 왜!!! 팔지 않는 거야!!! 나눈  웨 햄보칼 쑤가 없어!!!

...... 어쩔 수 없다. 우유만 부어주면 크림을 만들 수 있다는 편리한 믹스를 이용해서 생크림을 만드는 수밖에. 하지만 난 집에 핸드믹서가 없잖아? 아마 안 될 거야...... 그래 안다. 그 밑에 핸드믹서가 없는 경우 도깨비방망이나 손 거품기를 사용해도 된다고 떡하니 쓰여있지만 예전에 손 거품기로 생크림 만들다가 한쪽 팔을 잃을 뻔했단 말이다. 이런 탁상행정의 산물스러운 설명서 같으니!

일단 꺼내고 고민하자. 생각해보니까 믹서볼도 없잖아. 지금이라도 양말 신고 다이소라도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번뜩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 믹서기를 써볼까? 검색해보니 믹서기를 써서 생크림을 만들 수 있다는 글이 반, 못 만든다는 글이 반이라 나는 전자에 걸기로 했다. 안되면 손 거품기로 막노동 하지 뭐. 하지만 믹서기를 안 쓴 지 오래되어 이거 설거지하고 세팅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손으로 생크림을 만드는 것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강려크한 의지.

파리바게트 갔다가 생크림이 없어 절망하며 사온 우유.

그 우유에 휘핑크림 가루를 투척.

위이잉 5초 멈춤. 위이잉 5초 멈춤. 위이잉 5초 멈춤. 이렇게 쉬었다 켰다를 반복하니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크림이다 크림 생크림 안녕하세요 생크림 씨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어요 어떡해 생크림 씨야 나 실물 처음 봐 실물이 더 잘생기셨어요 오늘 안에 못 보나 했는데 어떡해 꺄악!!!!!

태초에 대지가 있었다. 그렇게 호들갑 떨고는 만들어낸 생크림을 흙 만들고 생크림 연성하느라 잊고 있던 카스텔라 위에 발라준다.

그 위에 오레오 부엽토 투척. 꾹꾹 눌러주면 꾹꾹 눌러 담은 공깃밥처럼 알찬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다시 카스텔라를 얹고,

생크림 투척. 너무 많이 발랐다. 꼭 최종 작업 전에 묻은 걸 닦아내자. 정말로 화분인 것처럼 속이고 싶다면.

다시 위에 흙을 깔아주면 대략 완성. 여기에 기호에 맞게 꾸며주면 된다.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건 왕꿈틀이 젤리와 석기시대 초콜릿. 사실 가장 화분처럼 보이는 건 자연 그대로의 상태지만.

나는 석기시대 초콜릿을 뿌려주었다. 요즘엔 이런 컬러풀한 화분도 나온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이제 풀을 심자. 다이소 조화 파트에서 제일 덜 조화 같은 친구로 골랐다. 조화 화분을 씻어서 그걸 용기로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어쩐지 스티로폼이 붙어 있던 용기라 찝찝잼. 조화만 뽑아서 씻고 고정되어 있던 부분은 잘라냈다. 아쉽게도 조화 화분은 휴지통으로 빠이. 사실 다육식물 조화가 더 진짜 같았는데 그건 정체불명의 하얀 가루가 묻어 나오기에 패스했다. 마약도 아닐 텐데 정체불명의 하얀 가루까지 먹일 순 없으니. 만약 집에 먹어도 되는 허브를 키우고 있다면 그걸 꽂는 걸 추천한다. 그러면 정말로 화분 빼고 다 먹어도 되는 케이크가 만들어진다.

짜잔! 뿌듯함이 느껴지는 완성샷! 하지만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화분받침이 붙어있는 것만 보고도 화분이 아닌 걸 알아챈다. 그러니 연기할 때는 붙은 화분받침도 다시 보자.

별도로 구입한 초코 크런치 가루도 뿌려줬다. 그 뭐랄까 카페모카 위에 올라가는 초코인데 통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이게 정식 명칭인지 모르겠다. 오오 섞이니 좀 더 흙스러워.

남자 친구에게 자신 있게 내놓은 뒤 흙수저인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 선물한 화분이지만 흙이라도 좀 주워 먹겠다며 화분에 손을 뻗으면 만사형통. 어리둥절 중인 상대에게 흙을 집어서 입에 넣어주면 두 번 만사형통. 만약 이 글을 보고 애인 혹은 지인에게 화분 케이크를 만들어줄 의향 내지는 용기가 생겼다면 꼭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후기를 남겨달라. 아이들하고 만들어도 좋고 어버이날 선물로 만들기도 한다고 하니 어머님들 자식분들도 만들면 후기 좀 주세요. 반응이 궁금해요. 이상 화분으로 속이는 데 성공하고 노동력을 보상받은 듯 뿌듯한 1인의 일기 끝...인 줄 알았는데 아 맞다 생크림 떡칠된 믹서기 닦아야 되는데... 물에 불려놓고 잊고 있었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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