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직 / 카카오프렌즈샵 홍대 플래그십 매장 방문기&지름 실패기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여기는 홍대입구역이다. 저기는 카카오프렌즈샵 홍대 플래그십 매장이다. 횡단보도 앞 핵 꿀 자리에 문을 열었다. 귀신같은 위치 선정. 내가 "저기가 사람이 바글바글한 걸 보니 그 얼마 전 문 열었다는 카카오프렌즈샵이군"이라고 하니 친구는 "횡단보도에서 신호 기다리는 사람이 왜 저렇게 많은가 했다"라고. 아니야 그거 아니야......
갈 생각이 1도 없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 인파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일단 지르려면 적진에 들어가야 하는데 돌파하는 것부터가 고난도 미션이다. 거의 성수기 공항 보안검색대 통과하기 급. 참고로 문 연 첫 주에 방문한 것이었으니 지금은 좀 다를 수도 있다.
수차례 말했듯 나는 뭔가를 기다려서 사는 성격이 아닌지라 이 행렬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으나 생각해보니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라는 각오로. 오더라도 한가해져서 파리 날리기 전쯤에 가야지 원.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캐릭터 줄 맞춰서 터뜨리는 스마트폰 게임 프렌즈팝을 연상시키는 캐릭터 쿠션 그 도열한 비주얼의 위엄. 게임이면 이미 두줄 맞춰서 터졌으므로 보너스 점수까지 받아가며 진작에 깼을 판이지만 저건 쿠션이고 여긴 홍대입구역 한복판이고 아직 줄은 길어 바람은 불고 추운데 들어가려면 멀었다고 정신 차려 죽지 말란 말이야...!
3층짜리 매장인데 벌써 이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이 2층에서 한껏 여유롭게 우매한 군중을 내려다보며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다.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는 없지만 장식만큼은 예뻐서 현실감각이 조금만 부족했으면 장식부터 사고 나무를 베어오려고 목수를 섭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카오프렌즈샵이 내 안의 지름신을 한껏 내리누를 수 있게 해 준 데에는 엄청나게 사악한 가격이 한몫했다.
여기서 잠깐 퀴즈. 이 친구의 가격은 얼마일까. 강신일 배우를 닮은 라이언 무드등이다. 엉덩이의 은밀하고 소중한 부분을 누르면 조명 단계를 조절할 수 있고 USB로 충전이 가능한 똑똑한 친구다. 그리고 귀엽다. 가격은 7만 9000원. 참고로 다른 캐릭터 브랜드 무드등이 5만 원 대다. 즉 내가 생각한 통상적인 제품 가격에서 정확히 2만 원(작은 건 5천 원) 높여 생각하고 그 가격에 카카오프렌즈와 프렌즈가 되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다고 여긴다면 비로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면 되는 것이다. 귀여움에 2만 원을 추가로 낼 수 있다면 카카오프렌즈샵에서 이제 더는 거칠 것이 없다. 하지만 난 거칠 게 많지. 그래서 갑자기 구경꾼 모드로 변신.
3층에 있는 라이언 카페. 이곳 역시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래도 1, 2층보다는 덜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카페에서 음료 마시고 푸드나 맛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자리가 없어. 그러나 나는 이곳을 두 번 다시 안 올 거라고 맘먹었기에 기어이 착석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악마의 누텔라 음료와 개당 3000원이나 하는 마카롱을 두 개 주문했다. 라이언과 어피치 마카롱. 과거 크리스피 크림에서 포켓몬스터와 콜라보해서 만든 무서운 피카추("지우... 죽여줘...") 나 눈 몰린 꼬부기와는 월등히 다른 퀄리티다. 하지만 3000원 줄만한 맛은 아니다. 모양은 예쁘다. SNS에 올릴 때 예쁜 게 최고라면 사 먹어 보는 걸 추천, 맛이 더 중요하다면 비추. 필링 맛에 깊이가 없다.
영화관에서 내 앞에 앉으면 딱 싫을 스타일.JPG
카페 안에도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들이 많았다.
이렇게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시력 보호를 위해 얼굴은 라이언 인형으로 자체 모자이크. 그리고 나는 다른 모든 인형들의 하나씩 들고 표정을 따라 하며 사진을 찍다가 결국 지쳐 쓰러지고 마는데... 크으... 진사님의 열정...
이런저런 굿즈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속옷부터 시작해서... 어피치 표정 보소...
귀엽지만 금방 때탈 것 같은 코스터.
사무실에서 쓰면 예쁠 컵까지.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충분하고 의지가 확고하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카카오프렌즈로 떡칠할 수도 있다. 누군가 카카오프렌즈와 함께 요람에서 무덤까지 리뷰 해줄 용자 없나요. 아기용품도 팔던데.
구경하다 사고 싶은 게 생겨도 속성으로 단념시켜주는 카카오프렌즈샵의 계산 줄.
다들 세상 편한 표정으로 자고 있어서 부러웠다.
인기가 많던 크리스마스 버전 라이언 인형. 카카오프렌즈샵을 나오는데 이 인형을 한 손에 2개씩 총 4개, 둘이서 8개를 구입해서 들고나가는 중국인 관광객 커플을 보고 적잖이 감동받았다. 진성 덕후란 모름지기 저래야 하는 게 아닐까. 만약 집에 가서도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사야지 꼭꼭. 이상 카카오프렌즈샵 구경을 빙자한 사람 구경 후기 끝.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kooocompany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kooocompany
쿠컴퍼니 브런치 https://brunch.co.kr/@kooo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