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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Jun 07. 2017

그렇게 또 대림미술관이 내 지갑을 털어갔다

지지직 / 대림미술관 더 셀비 하우스 전시 굿즈 마스킹 테이프 3종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티켓 컬러 봐... 자유분방한 사진과 일러스트로 힙한 사람들의 문화를 담아내는 포토그래퍼 토드 셀비(Todd Selby)의 <더 셀비 하우스(The Selby House)>전 VIP 티켓이다. 즉 이 전시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 전시 굿즈인 마스킹 테이프 3종을 질렀다. 예전 닉 나이트 전 포스팅(하단 링크 참조)에서 그랬듯 이번 글도 4차 산업 시대에 걸맞게 전시 리뷰와 굿즈 리뷰라는 다층적 복합장르(?)가 될 것이다.

https://brunch.co.kr/@kooocompany/120

늘 독특한 전시로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인 대림미술관. 이번에는 건물 외벽부터 수채화미를 뿜뿜 뽐내고 있다. 나는 저 거북이의 무심한 얼굴에 꽂혀버렸다. 하지만 인기가 없는지 원하는 굿즈가 없어서 슬펐고요.

토드 셀비의 블로그 <더셀비닷컴(theselby.com)>의 하루 방문객은 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 이 브런치 누적 방문자 수가 70만 명인데 그걸 일주일 만에 달성하는 남자라. 부럽잖아!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크리스천 루부탱(Christian Louboutin)등 일상이 공개되지 않았던 유명인들의 사적 공간을 친구의 집을 보여주듯 친숙하게 담아내고, 그들의 삶을 사진과 일러스트로 보여줘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비 오는 날이었지만 전시는 북적북적. 대림미술관의 장점은 지나가던 태극기 집회 할아버지를 붙잡고 여쭤봐도 대통령 탄핵 사유는 모를지언정 이름만큼은 들어봤다며 무릎을 탁 칠 유명한 예술가부터, 생소하지만 작품을 통해 영감을 주는 신진 작가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토드 셀비가 직접 찍은 사진과 일러스트로 꾸며진 공간이다. 사진 색감이 특히 따뜻해서 마음에 들었다.

일러스트 특유의 저 한결같이 무심한 표정이 매력 포인트. 그런데 저 일러스트는 쇼미더머니 나왔던 래퍼 비와이 닮았는데? Tic Toc 시간 위에 나를 던져

내 방도 저렇게 찍어 놓으면 장난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특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포인트를 잘 포착했다.

이런 식으로 음침하게 셔터를 눌러댔겠지... 이 예술가 양반.

색을 참 예쁘게 쓴다. 대충 그린 것 같은데 직접 그려보면 저렇게 한 번에 붓질로 형태 완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그림체였다. 마치 피카소 그림처럼.

고양이 짱팬인 친구를 위해 한 컷 찍어봤다.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으로 건물 전체를 도배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일까?

미술관 안에 토드 셀비의 방을 재현했다. 함께 간 친구는 전시를 두 번째 보는 것이어서 이날 일종의 도슨트 역할을 해 줬다. 여기를 보기 전 친구가 "작가의 방이 되게 지저분하더라"라고 해서 내가 "내 방도 그 못지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친구는 "아닐걸? 정말 장난 아니었어"라고 했고, 확인 결과 내 방이 더 더러운 것으로. 여러분 방이 더러워야 영감과 창의력이 샘솟는 것 아니었나요? 저만 더러운가요? 그리고 전 더러운 게 아니라 방이 좁은 반면 물건이 지나치게 많은 것일 뿐이라고요!

토드 셀비라는 사람의 뇌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돌아가고 있을까. 제일 인상적인 건 선인장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역시 파워블로거도 식물 죽이는 데에는 별 수 없는 모양이다. 파워킬러.

셀비 그림 특유의 표정은 보고 있으면 같이 이완되는 기분이라 마음에 든다. 사진 찍기에도 화사하니 예뻐서 많은 사람들이 (대림미술관은 특히나 원래도 그렇지만) 이 공간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대림미술관 마마께서는 친히 내 지갑을 털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이셨다.

더 셀비 하우스 전시 기념품샵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화사한 굿즈들. 알록달록하다. 에코백 재질이 좀만 더 좋았어도 나는 에코백을 또 샀을 텐데. 다행이다. 다행인가?

굿즈가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라 대체재를 찾고 싶은데 쉽지 않다. 혹시 좋은 단어가 있다면 추천해 달라. 음... 기념품 정도? 하지만 알다시피 일반 브랜드 기념품과 창작자가 만들어서 파는 굿즈는 그 미묘한 차이가 있지 않나. 엄밀히 따지면 셀비가 만든 것들이니 굿즈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림에서 덕후 냄새 나서 일부러 굿즈라고 쓴 것도 없지 않다.

넌... 누구니...? 요즘 마스킹 테이프 수집에 다시 꽂힌 나를 알아보는 넌... 대체... 일명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필수품이라는 마... 마스킹 테이프...?

넌... 왜 미술관을 탈출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거지...?

그렇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아주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전시 리뷰에서 마스킹 테이프 리뷰로 넘어간다. 이 매거진은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루니까. 좋아 아주 자연스러웠어. 더 셀비 하우스 마스킹 테이프는 총 3종류라서 3종류 다 샀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31종류라고 하면 31종류 다 사 먹을 기세.

색 감 좀 봐. 파 스 텔 톤. 끝 내 준 다. 예전 학교 앞에서 팔던 혀에 대면 사르르 녹는 테이프 껌 같은 느낌이다. 먹으면 바닐라나 딸기, 민트 크림 맛이 날 것 같은 색감. 그렇다고 먹지는 않았지만요. 나는 염소가 아니니까!

저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이 비닐에 꽁꽁 묶여서 억압받고 있는 건 더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폭풍처럼 뜯어서 이들에게 마르크스의 리베라시옹ㅡ현재에 주어져 있는 직접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ㅡ을 만끽하게 해 주리라. 잠시 나의 먹다 만 아이스커피잔이 마스킹 테이프를 억누르고 있던 포장용 스티커라는 억압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기로 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파스텔톤 일러스트 좋아하고 마스킹 테이프 좋아하면 사세요 두 번 사세요. 가격도 개당 2400원 선이라 다이소 마스킹 테이프보다는 비쌀지언정 그보다 일러스트가 예쁘고 데일리라이크 마스킹 테이프나 마넷 마스킹 테이프 등과 비교하면 뒤지지 않는 디자인과 특히 반데 벚꽃 마스킹 테이프의 예쁘지만 사악한 가격에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줄 참한 가격이 매력적이다. 만약 VIP 티켓이 있다면 10% 할인도 되니 개당 2160원에 살 수 있는 셈. 하지만 원래 가격인 2400원도 강제로 상향 평준화되어버린 한국 집값 같은 마스킹 테이프와 다꾸 시장에서는 꽤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친구야! 이렇게 좋은 전시를 보고 지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마워! 이렇게 또 토드 셀비의 방보다 지저분한 내 방에 생필품 아닌 사치품이 늘어났다. 1000개의 물건이 모이면 내 방에서 블랙홀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가끔 상상해본다. 작은 사치를 너무 많이 하면 큰 사치인 거 같은데 다음엔 그냥 한 방에 큰 사치를 해버릴까 싶다. 잊었는가, 내가 합리화 천재라는 것을.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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