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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04. 2020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줄게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작년 초, S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서 친구의 안경을 깨부수는(!) 일이 있었다. 셋이 놀다 S와 다른 한 명이 그 친구와 다퉜는데, S가 그 친구의 안경을 부러뜨리라고 한 다음, 둘이 진짜 그렇게 했단다.

방과 후 학교 담당자가 전화가 왔을 때, 믿을 수가 없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아니 S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 다음은 평생 범생이었던 나의 에고로 인한 분노가 치밀었다. 이노무새끼가? 어떻게 그런 폭력적인 짓을? 그 친구와 부모님께 미안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지? (순하디 순한 S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부모는 자식을 모르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S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왜 그런 나쁜 짓을 했냐고 불 같이 혼내고 십분간 손들게 하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S는, 그 친구가 먼저 그 셋 중 다른 친구에게 나쁘게 굴었다고 설명하며 약간 억울해했지만, 정색한 나를 보더니 잔뜩 쫄아서 막 울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패닉상태에서 다짐했다.

다음 날, 어떻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할 지 종일 고민하다가, 방과 후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다시 이메일을 썼다. S가 확실히 잘못한 거 반성했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시켰으니, 그 친구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안경 값을 어떻게 물어드리면 되는지 좀 물어봐달라고..

그 선생님은 그 아이 부모님은 다행히 이제 화가 가라앉으셨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이렇게 이메일을 마무리하셨다. “S가 이번에는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다음에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나는 (다시 또)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나에게 S의 행동은 “잘못”이었다. 잘못했기에 당연히 혼나야했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선생님의 표현은 나에게 다른 관점을 일깨워주었다. 매 순간 아이들도 선택을 하는 존재이고, 어른들도 그 선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게 돕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상황에서 한 번도 생각할 수 없었던 관점, 표현이었다.

그 사건은 S가 그 친구에게 반성문을 전하고, 둘이 다시 사이좋게 놀게 된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래도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그 아이는 ADHD를 가진 아이라, 부모가 더 속상해했다는 걸 떠올리면 여전히 몸둘 바를 모르겠기도 하다.

그리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S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탑재된 기회이기도 하다. 그 이후에 S에게 더 많은 걸 물어본다. 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때 생각한 건 뭔지,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지, 엄마가 그렇게 행동해도 너는 좋다고 생각하는지, 등등. S에게도 그 선택에 대한 엄마의 생각도 들려준다. S의 말을 듣고 내가 더 이해했거나 생각이 바뀐 점이 있다면 그것도 말해준다.
아직 어린 S는 내가 어떤 생각으로 자기를 대하고 있는지, 엄마로서 내가 배워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S에게 무엇이 왜 옳고 그른지 분명히 알려주는 것만큼이나, S가 스스로 그걸 이해하고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믿고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여전히 불같이 화가 나 진정하는 데 오래 걸릴 때도 많지만, 그것조차도 S에게 말한다. 지금 엄마도 control my emotion하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S가 만들어가는 선택들에 개입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단지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쌓아올리는 순간이 모여, 어른이 된 S이 만드는 선택이 더 단단하고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나는 혼나면서 컸고 그래서 이유는 몰라도 눈치를 보게 된 어린 날이 있었기에,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르리라 믿고 희망하며.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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