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숲 속에 위치한 농장에서 울타리 철거 작업을 대부분 끝냈다. 들판이 있는 대부분의 농장과 달리 이 곳은 빽빽한 산림 한복판에 단출한 사과나무와 알파카 여덟 마리, 염소 몇 마리가 있는 곳이다. 광활한 대지를 소유한 전형적인 호주의 농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드넓은 이 곳엔 6년에 걸쳐 직접 집을 디자인하고 설계, 건축, 시공에 직접 참여한 농부 M과 그의 아내 G의 아름다운 집이 참으로 따듯한 공간이다. 자욱한 안개를 뚫고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사과나무 아래 풀을 뜯는 갈색, 검은색, 점박이 알파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고 갈색머리 염소들이 평온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정원엔 자줏빛 장미와 하얀 장미가 기지개를 막 키는 중이었고 나무 하나, 돌 하나까지 직접 고른 집은 마치 에어비앤비 잡지에서 갓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곳도 지난 2월 초엔 산불의 피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산불이 일어날걸 이미 예상하고 무려 3개월 동안 이를 대비하고 있었고 집, 농장 설계 시작부터 산불에 대비해 곳곳에 스프링클러를 설치 헸다 한다. 하지만 설마 새벽에 산불이 덮칠 줄은 미처 몰랐고 새벽 네시 반 무렵, 매캐한 연기에 잠이 깬 M과 그의 딸이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너무나 무겁고 넓게 내려앉은 화재 연기였다. 산불로 인해 모든 통신, 전기가 끊겼고 설령 소방서에 연락이 되었어도 불길이 너무 심하고 워낙 산속에 있기에 진입조차 불가능했을 상황이라 했다. 무려 36시간 동안 M과 딸은 화재를 직접 진압해야 했고 그동안 잠을 잘 수도, 무얼 먹을 수도 없었다 했다. 7만 리터의 물을 썼고 마실 물도 없어 콜라만 마시며 불을 껐다 한다. 한쪽에서 불이 다 꺼졌다 싶어 안심하면 다른 방향에서 불이 났고 최악은 다른 방향의 불길이 합쳐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그 큰 나무들을 모조리 삼켜버렸을 때였다고.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맞서 싸웠다한다. 집념으로 싸운 끝에 다행히 집과 사과나무, 가축은 지켜냈지만 대부분의 나무와 토지가 새까맣게 불타버렸고 울타리 또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헬리콥터 지원 요청을 바랐지만 당시 워낙 광대하게 산불이 났고 이보다 더 심하게 불이 난 곳들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렸는지,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이 그 큰 땅을 지켜냈다고 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통나무집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나 현실감이 없고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연신 도와주러 와서 고맙다는 그들은 차와 커피, 초콜릿, 사과 등을 주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를 거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오늘 아침엔 심지어 계란 프라이, 소시지, 베이컨, 토스트, 딸기, 수박이 담긴 아름다운 아침식사까지 대접해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농가를 위해 일했고 비스킷을 받은 적은 있었어도 집에 초대받아 차뿐 아니라 음식까지 대접받은 건 처음이라, 나와 동료들은 모두 감사함에 어쩔 줄 몰랐다. 어떤 농장은 일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농부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M은 곁에서 함께 일하며 계속해서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수월할 거라며 조언을 건네는 등 계속해서 소통했다.
다른 곳에서보다 더 마음이 많이 간 것도 당연하거니와 더 열심히 일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지. 이제 철거 작업이 대부분 끝났으니 재료 구매와 계약이 끝나면 2주 뒤부터 본격적으로 울타리 설치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오늘 할당량이 끝나고 인사드리고 가려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비닐봉지를 들고 와 정원에 심긴 일곱 가지 다른 사과나무에서 제일 잘 익은 사과들을 고르고 골라 무겁게 챙겨주시며 또 한 번 고맙다고 곧 다시 보자고 손을 흔드는 그의 뒷모습에 마음이 참 뭉클해졌다. 꼭 이 곳에 다시 배정받아 일하러 가고 싶다. 이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이 곳에서 외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 어제, 오늘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