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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Feb 01. 2018

지나가다 페미니스트와 마주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

여성 페미니스트 W에게 당신은 '진짜 페미니스트'인지 물었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입에 빈번하게 오르내린 시기가 있었던가. 그와 함께 고개를 든 건 사회에 깔려 있던 혐오의 정서였다.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너 메갈이냐?"라는 소리를 듣는 게 어이없다는 여성과 요즘 '페미' 운운하는 여자 중에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없다는 남성. 궁금해졌다. 이들은 터놓고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본 적은 있을까? 그래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직장인 페미니스트 W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장문의 답변과 함께 자신도 페미니즘에 대해 배워나가는 중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질문은 많았지만 궁금한 건 하나. 당신은 '진짜'냐는 것. 참고로 페미니스트 W의 의견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의 페미니즘' 중 하나라는 점을 밝힌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 W입니다. 사실 떳떳하게 페미니스트라고 말해도 될까 부끄러울 도 있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사람입니다. 기혼 여성이에요.


#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

예. 저는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회문제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물론 계속 알아가는 단계이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지정해야 늘 조심하며 살 수 있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게 두렵지 않나요?

얼마 전까지 카카오톡 프로필에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상태 메시지를 지정해뒀었어요. 사실 저도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가 좀 두렵기도 하고, 온라인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기회가 거의 없기도 해요.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이야기하는 정도죠.

아무튼 나름대로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카톡에 페미니스트임을 표시했지만, 카톡 상태 메시지 따위 아무도 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ㅋㅋㅋㅋ  나만 남의 상태 메시지 잘 읽나? 하아...


# 페미니스트로 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경우에는 그동안 차별을 많이 받고 살았기 때문이죠. 저는 지방대를 나왔고, 비정규직으로 직업활동을 시작했어요. 대기 파견 형태로 정규직처럼 기본 노동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 지정된 상태로 출퇴근했어요.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에 시달렸지만 4대 보험은 물론이고 대체휴가나 월차 등 노동자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없었어요. 지금은 정규직이지만, 한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한 경력이 발목을 잡았어요. "정규직은 처음이니 임금을 깎자. 대신 4대 보험 받게 해주잖아" 이런 식이었죠. 사회에서 만난 권력있는 사람에게서 차별과 폭력을 빈번하게 겪다보니 차별이나 권력관계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됐죠.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서 작사가 김이나가 출산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장면. [MBC]

# 한국 사회에서 여자라서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나요.

하... 다 언급해야 하나요? 일단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직전 직장에서의 퇴직 사유가 선배 때문이었어요. 이전 회사에서 입사할 때 기혼임을 알고 자녀계획을 묻기에(이건 불법입니다!) 아이를 안 낳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윗 선배가 제게 "애 안 낳겠다는 말 진심이냐"라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아니, 회사 입장에서는 네가 3년 안에 애 낳으면 손해 아니겠니" "피임은 잘 하고 있지? (어깨 툭툭 치며) 잘해~" 이러는데 진심으로 내가 왜 노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회사에서 불필요한 야근은 하지 않겠다는 주의인데, 이후에도 다른 동료로부터 그 선배가 "쟤(저)가 애 낳아서 야근 안 하고 집에 가버린다면 나 정말 너무 화날 것 같아"라고 얘기한 것을 전해 들었어요.


그 선배가 유독 저한테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제가 기혼여성이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일 할 때도 공과 사 구분 없이 자감정가는 대로 동료를 대하는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 괴롭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면 사람들 반응은 비슷해요. "그 선배 노처녀지? 노처녀 히스테리 아냐?" 그 선배가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인 건 맞지만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렇게 단정 지을 만큼 그 사람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요. 사회가 '노처녀'라고 무례하게 단정 짓는 사람에게 성격에 결함이 있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이가 많든 적든 성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은 있는 법이죠.


또 어린 나이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참 많은 수모를 겪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남성 다수에게 '뭘 모르는 애' 취급을 많이 당했. 회사에서 부당함을 느끼면 만만한 저한테 화풀이하기도 하고, 뭐 하나 실수해도 자기가 실수할 땐 사과조차 안 하면서 제가 실수하면 '여기가 대학생 동아리인 줄 아느냐'라고 훈수를 놓기 일쑤더라고요. 첫 직장에선 고성을 지르며 싸 남선배들이 정말 많았어요.


# 직장에서는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지금 직장에서도 그렇고 이전 직장에서도 제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알아요. 전 직장에서 팀 회식 때 동료들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리더인 선배와 저를 괴롭히던 선배, 저와 다른 남성 동료들로 이뤄진 팀이었는데 저와 남성 동료들은 그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을 참 많이 했어요. 나머지 선배들은 그냥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있다", "메갈리아 참 나쁘다"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죠.


그 이후로는 일을 할 때 인권 감수성과 관련된 방향을 제시하면 "아휴, 이 페미니스트들"이라는 반응이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서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는 게 참 힘들더군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여전히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이 많아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을 '프로 불편러'라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당신의 행동을 지지해주나요?

이 회사 선배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회의를 주도하기에 페미니즘과 인권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죠. 제가 지향하는 일의 방향은 앞으로 이런 쪽이 될 것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한 상태고요. 아직까지 제지를 받거나 무안을 당한 적은 없어요.


서울에 올라오기 전 함께 지냈던 친구들 페미니즘 말할 일이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어쩌다 메갈리아 때문에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친구들이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일부 비판할만한 행동 하나를 꺼내자 '메갈리아=일베'라는 흐름의 대화가 이어지더라고요. 몇 시간 토론과 설득을 해도 메갈리아를 사회 악으로 치부하는 친구들하고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어요. 한 번은 학창 시절 절친했던 친구가 "너의 SNS를 주시하고 있어. 네가 어떤 입장인지 알아. 우리 그 얘기는 제외하고 다른 주제로만 이야기하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ㅋㅋㅋ


#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표적인 여성 혐오에는 뭐가 있을까요.

아까 이야기했던 노처녀 히스테리가 대표적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려 했다는 착각? 이를테면 타인이 팔뚝을 잡았다고 쳐요. 만약 남성이 여성의 팔뚝을 잡았다면 여성은 대부분 '뭐야 이 새끼' 이런 반응이지만, 여성이 남성의 팔뚝을 잡았다 하면 '쟤가 나를 좋아하나 보다'라고 오판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여성이 그럴만했다(옷을 어떻게 입고 다닌다니, 언행이 어떻다니)는 이야기는 요즘에도 자주 듣는 이야기예요.

 

요즘은 남성도 몸에 핏 되는 슈트를 많이 입기도 하고, 여성들과 더 친근하게 지내는 남성도 많잖아요. 그런 남성들한테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여성한테만 일어나고 있는데, 이게 이상하지 않다면 여성, 남성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른 존재로 보고 있다는 거죠.


#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말이 있나요?

브라를 하지 않아요. 대부분 눈치 못 채는 것 같아요. 간혹 눈치채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은데 굳이 왜 브라를 안 하냐 물어볼 정도로 간이 큰 인간은 아직 못 봤어요. 그리고 카톡 프로필에 페미니스트라고 적었습니다. 카톡을 개인적으론 잘 안 쓰고 일 때문에 쓰는 경우가 있는데 경험상 일로 만난 남자들 매너가 더러웠던 적이 많아서 나 페미니스트니까 알아서 조심해 달라는 신호로 표시해두고 있죠.


고부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 [와이제이코마드]

# 요즘 'B급 며느리'라는 영화가 화제였는데 보셨나요.

네, 어찌 안 볼 수 있나요. 남성 감독이 찍은 한계가 명확히 보였어요. 피해자들 싸움만 팝콘각으로 만들고 정작 가해자들, 가부장제에 대한 성찰이 없었죠. 극 중 주인공이 말해요. 손발이 움직이는 어른 넷이 있는데 그걸 시모가 했네 며느리가 했네 참 우스운 일이라고요. 핵심은 그거 하나 나왔네요. ㅋ


# 어떤 부분이 특히 공감되던가요? 기혼여성이라니 남편의 반응도 궁금하네요.

위에 언급한 손발 움직이는 어른 넷 중 꼼짝 안 하는 남자 둘이요. 남자들 일 좀 해라. 남편 반응은 그냥 노코멘트할래요.


# 당신은 시댁의 기준에서 비급 며느리인가요?

사실 순순히 가족이 되기를 거부하는 상태라, 저는 제 정체성에서 며느리를 아예 배제하려고 노력 중예요. 물론 시어른들은 서운하시겠죠. 그 감정이 다 사라지고 나야 우리가 진정한 가족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쌩판 모르던 남이 어떻게 가족이 되나요. 애착이 생기는 것도 계기가 있어야 가능한 건데 강요한다고 생길 수 없죠.


# 곧 설 연휴입니다. 이번 명절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버님, 노동자의 권리가 땅에 떨어진 나라에 살면서 일 년에 휴가 딱 한 번 밖에 못가는 가련한 인생 명절 때라도 월차 몇 개 내서 여행 갈 수 있도록 차례 지내러 안 오겠습니다” 하는 거거든요. ㅋㅋㅋㅋ ...할 수 있을까요?ㅋㅋㅋ


# 우리 사회가 기혼 여성에게 더 야박한 것 같나요.

사람따라 다르죠. 사회가 기혼 여성한테는 아이 낳는걸 의무로 여기는데, 회사 가면 애 낳을 거냐며 낳지 말라고 닦달하거든요. 남직원들한테는 빨리 결혼해서 애 낳아 국가에 이바지하라는 아무 말 뱉으면서도 정작 기혼 여직원인 저한텐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해요. ㅋㅋㅋ 아, 근데 확실히 기혼자라 조금 더 어른 대접받는 건 있어요. 웃기는 일이죠, 정말.


# 당신이 말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건 정확히 무엇인가요?

페미니스트가 N명의 사람이 있다면 N개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겁니다. 전 인권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물론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 하는 사람의 의견입니다. ㅋ


# 청와대 청원 ㅡ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 ㅡ 수가 10만 명 가까이 되던데 어릴 때 페미니즘 교육 비슷한 걸 받아본 적 있나요?

학창 시절에 페미니스트인 선생을 딱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이렇게 삐뚤어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애를 낳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지만, 딱히 출산에 대한 거부감이 없던 시절에도 스스로에게 ‘내 아이가 나랑 똑같은 공교육을 받는다면?’이라는 질문을 하고 너무 소름 끼치기까지 했다니깐요. 제가 운이 나쁜 경우였다고 도 생각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는 교사를 만났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미니즘 교육은 우선 교사에게 먼저 이뤄져야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교사들이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것이 더 이상하겠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 한남충, 빻았다 등의 단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된장녀, 김여사 같은 단어들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을까요? 미러링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도 미러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분명히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저를 공격하더니 "메갈리아가 욕하는 게 나같이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 아니냐. 내가 바로 한남충이다"라 하더군요... 사실 는 한남충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어요. 그런 의미에선 지양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가 저한테 된장녀나 김여사 같은 언어로 욕한다면 저는 "야 이 개 빻은 한남충 새끼야."라고 되돌려줄 거예요. 본인이 그런 언어로 욕했을 때 이런 답이 온다는 것을 경험해 봐야죠. 인간이 역지사지가 되어야지.


# "페미니즘 때문에 요즘 살기 힘들다"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경험상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여성을 다른 존재로 놓고, 자꾸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더라고요.


# '꼴페미' '페미나치', 모두 여성주의자를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일부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여기던데요. 이런 이들의 사고에 동의하나요?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저에게도 "나 페미니스트 아님"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흑역사가 있답니다. 제가 기혼이란 이유로, 제 언행이 어땠단 이유로 저 또한 지나치게 공격받고 '아놔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사람 중에 저런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진짜 빡치네. 나 너랑 같은 페미니스트 아냐' 이랬던 시절이 있습니다... 너무 흑역사라 공개 안 하는데 어쩌다 보니 흠흠.


페미니스트도 각자가 다른 사람입니다. 하나의 페미니스트로 퉁쳐서 싸잡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경험상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뒤 차별받는 일이 더 많이 생기더라고요. 만약 일 하다 실수를 해도 "인권 운운할 에너지로 일이나 똑바로 해라" 이런 피드백들이 오죠. 분명 흑역사 시절의 저처럼 과민반응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 공부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의견을 수정하기도 하고, 어쩔 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때도 있죠. 누구나 그런 때나 시기가 있지 않나요? 저 또한 페미니스트일때든 아니든 저런 시기가 있었고, 있고, 앞으로도 있을 예정이겠죠. 사람이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엠마 왓슨이 말한 것처럼 "페미니즘은 남을 휘두르는 채찍이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해요. 저 또한 페미니즘을 채찍처럼 휘두를 때도 있는데 되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합니다. ㅠㅠ


#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의 커뮤니티를 하나요.

안 합니다. 커뮤니티를 할 만큼 부지런하지가 않아요. 또한 온라인에서 유의미한 토론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제 경우에는 페미니즘 서적을 읽거나, 배울만한 페미니스트들의 기고를 읽거나 그들의 SNS를 팔로우해서 의견을 듣고 가끔 댓글로 의사 표시하는 게 전부예요.


#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도 남성에게 기대거나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 일부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합니다. 페미니스트는 결코 '명패'나 '훈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여성 일부'라기 보단 남성도 그런 사람 있잖아요. 최근에 유아인이 그랬죠. 자신이 스스로 내가 무엇이다 정체화를 할 때는 분명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을 해야죠. 자아도취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돌 팬덤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세상입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지, 해당 연예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거나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몇 년 전 우연히 어떤 인디밴드와 같이 술을 마시게 됐는데 "요즘 페미니즘이 대센데 가사가 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뭐 예상대로 분위기 싸해졌죠. ㅋ 그 이후에 그 밴드는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저는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좋아해요. 매력 있거든요. 물론 달라지면 훨씬 멋지겠다, 이런 생각은 늘 해요.


저는 페미니스트이지만 타인을 '페미니스트이냐 아니냐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멋진 페미니스트도 좋아하지만, 다른 멋진 매력을 발견하면 그것으로도 타인을 충분히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제 친구 중에도 페미니스트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세희 역을 연기한 이민기(왼쪽). [tvN]

# 최근 나온 드라마나 영화, 만화나 게임 등 당신이 본 다양한 콘텐츠 안에서 페미니스트 같다고 느낀 캐릭터나 인물이 있었나요. 그 이유는요.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그것도 알려주세요.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드문드문 봤는데 주인공인 세희(이민기)가 그렇더라고요. 전 사실 그때 MBC 드라마 '마녀의 법정'을 주로 봤어요. 여검! 사랑합니다. '마녀의 법정'은 성범죄만 다룬 드라마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전개도 재미있거든요.


# 페미니즘에 대해 완벽하게 문외한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나 책이 있나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글도 좋아하지만 강의도 좋아해요. 진짜 재밌거든요! 요즘은 노동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있어서 노동에 관한 책을 봅니다. '일 하지 않을 권리' 요. 이거 보니까 회사 그만두고 싶네요.


# 앞으로 페미니즘의 외연 확장을 위해 계획 중인 활동이 있나요.

사실 작년에 페미니즘에 대한 문구를 넣은 티를 만들려고 했는데... 망했어요. 엉엉. 올해 다시 해야 하나... 하...ㅋ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런 제가 페미니즘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면 아무 말 대잔치가 될 것임이 뻔하기 때문에... 제가 만들 수 있는 건 생리 컵 써봤다, 노브라 해봤다, 생리 팬티 입어봤다! 뭐 이런 후기들이 되겠네요. 제가 해봐서 아는 소소한 해방들에 대해 말이에요. ㅎㅎ

#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얼마 전에 제가 어떤 대학생인 친구에게 선배처럼 "연락해라, 밥 사겠다"했는데 마침 옆에 페미니스트인 다른 언니가 있었어요. 그 언니가 "왜? 네가 밥 살 이유라도 있나?"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아, 내가 몇 살 더 먹었다고 꼴값을 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전 나이만 더 먹었지 그 친구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데 전형적인 선배노릇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뒤에는 저보다 사회적으로 후배이거나 나이가 어린 친구들과 최대한 동등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요. 꼭 후배로 구분 짓지 않고 동료나 동지 등으로 생각하죠. 그들과 위아래 없이 지내니 배우는 게 정말 많더라고요. 선배였을 때 듣는 이야기와 친구가 된 뒤 듣는 이야기, 정서적 교류는 참 결이 달라요. 전 후자가 더 좋더라고요. 여러분도 그런 즐거운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길 바랄게요.


구석구석 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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